1화. 딸이 보낸 부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딸이, 내가 죽는 날짜를 알려왔다.
2029년 10월 17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 뒤였다.
편지는 일요일 아침,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우표도 없었고 봉투에는 주소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반듯하게 접힌 흰 봉투 한가운데 내 이름만 쓰여 있었다.
한서윤에게.
글씨는 서툴렀다. 자음과 모음의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윤’의 받침은 유난히 길게 내려와 있었다. 이제 막 글씨를 배운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눌러쓴 것 같았다.
나는 봉투를 들고 복도 양쪽을 살폈다.
오전 7시 10분.
센서등은 몇 번 깜빡이다 꺼졌고,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닫혀 있는 엘리베이터 위로 붉은 숫자 1만 떠 있었다.
잘못 배달된 편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봉투에 적힌 이름은 분명 내 것이었다.
나는 편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커피부터 내렸다. 오늘은 오전 열한 시 예식 촬영이 있었다. 늦어도 여덟 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장난 같은 편지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에도 자꾸 봉투로 시선이 갔다.
결국 나는 봉투 끝을 뜯었다.
안에는 연한 분홍색 편지지 두 장과 작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와 조금 마른 얼굴, 웃을 때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
처음 보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아이의 왼쪽 눈썹 끝에는 아주 작은 흉터가 있었다. 나와 같은 자리였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넘어져 생긴 내 흉터와 모양까지 비슷했다.
나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파란색 볼펜으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봄, 열두 살.
엄마가 지어준 이름.
손끝이 순간 차가워졌다.
나는 편지지를 펼쳤다.
엄마에게.
엄마는 아직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를 알아.
내 이름은 한봄이야.
엄마가 봄에 처음 나를 만났다고 해서 지어준 이름이래. 나는 겨울에 태어났는데 이름은 봄이라서 어릴 때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지금은 좋아해.
엄마는 이 편지를 믿지 않을 거야.
그래서 오늘 일어날 일을 먼저 알려줄게.
오전 11시 42분,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도망칠 거야.
오후 12시 17분, 천장에서 유리 조각이 떨어져.
그때 엄마는 바닥에 붙은 흰색 테이프 위에 서 있으면 안 돼.
다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오늘 엄마는 아빠를 만나.
하지만 엄마, 아빠를 만나면 안 돼.
아빠를 사랑하면 엄마는 2029년 10월 17일에 죽어.
나는 편지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웃음이 나왔다.
“미쳤나 봐.”
누군가 촬영을 앞두고 장난을 친 게 분명했다. 웨딩업체 직원이나 함께 일하는 사진작가 중 누군가가 내 반응을 몰래 찍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화재감지기와 조명 사이를 살펴봤지만 카메라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다.
편지를 다시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않으면 나는 태어나지 않아.
엄마가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나도 사라지고 싶지는 않아.
미안해, 엄마.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오늘은 꼭 조심해.
그리고 세 사람 중 아무도 믿지 마.
다음 편지는 내일 보낼게.
엄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딸, 봄이가.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딸.’
그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편지에 적힌 사망 날짜대로라면 나는 3년 뒤에 죽는다. 사진 속 아이가 정말 열두 살이라면, 이 아이는 아주 어린 나이에 나를 잃었다는 뜻이었다.
아니, 그 전에 나는 지금 결혼할 상대조차 없었다.
마지막 연애가 끝난 지도 2년이 넘었다. 소개팅은 세 번 나가 봤지만 두 번째 만남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내게 미래의 딸이라니.
나는 편지와 사진을 서랍 안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 밖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큰 편이었고 검은 티셔츠에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구겨진 종이상자를 들고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머리카락이 조금 헝클어져 있었다.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오늘 803호로 이사 왔는데요.”
남자가 작은 택배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저희 집 앞에 있어야 하는데 703호 앞에 놓여 있더라고요.”
“제 물건은 아닌데요.”
“네. 제 겁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혹시 제 짐이 또 잘못 내려온 게 있나 해서요. 이사업체에서 층을 착각했나 봐요.”
나는 순간 서랍 쪽을 돌아봤다.
“편지는요?”
“네?”
“혹시 저희 집 앞에 편지 놓으셨어요?”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무슨 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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