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마네킹은 내게 참 신기한 존재였다.
사람도 아닌데 사람만큼 컸고,
너무 아름다웠지만 머리카락은 없었으며,
날씬한 몸은 현실이라기보다 이상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마네킹은 늘 번화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도시의 화려함과 사치를 상징하는 여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 순간이 있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잠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마네킹을 보게 되면,
조금 전까지 누구보다 화려했던 그녀가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여자로 보였다.
마치 옷은 언제나 남이 입혀 주고, 자신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만약 그녀에게도 감정이 있었다면, 매일 쇼윈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쁜 옷을 입은 날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지만,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고,
옷이 벗겨진 순간에는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으며,
자신의 삶을 단 하나도 결정할 수 없는 존재.
그런데도 그녀는 언제나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마네킹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동시에 가장 초라한 여자였다.
멋진 옷을 입으면.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서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입혀 주는 모습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
화려함 속의 빈곤.
아름다움 속의 공허.
문득 도시속에서 누군가에게 더 멋져 보이기 위해.좋고 비싼 옷을 입고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는 순간, 우리 모두 비슷한 몸 하나를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옷과 직함,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겉모습으로 평가받고, 겉모습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며.
어느새 그들도 마네킹처럼 보여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픈 마네킹이여. 슬픈 도시인이여.
오늘도 누군가의 시선을 입고 살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