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공화국 오시 외곽의 마을. 준공을 2주 앞둔 보건소 현장, 나는 감리사와 함께 새로 페인트를 칠한 벽면을 살피고 있었다. 손끝으로 두드려본 벽면에선 시멘트의 단단함이 아닌, 텅 빈 불길한 공명음이 돌아왔다.
PM: "감리사님, 여기 소리가 좀 이상합니다. 분명 고강도 콘크리트로 마감하기로 한 벽체인데, 공명음이 심상치 않네요."
감리사: (정밀 스캐너를 대본 후 굳은 표정으로) "PM님, 내부를 긁어보니 설계도와 전혀 다릅니다. 콘크리트 대신 모래 함량이 과도한 저질 몰탈이 채워져 있습니다. 손으로도 파헤쳐질 정도예요. 구조적 안전성을 전혀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기 때 벽체가 균열을 견디지 못할 겁니다."
PM: "소장님, 이 벽체 공사 다시 설명해 주시죠. 보건소는 주민들이 위급할 때 찾는 공간입니다. 이런 부실한 벽으로 어떻게 건물을 지탱합니까?"
소장: (당황하는 기색 없이 삐딱하게 서서) "PM님, 자재비가 최근 너무 올랐습니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은 계약 금액으로는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었어요. 수익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겉면을 페인트로 잘 칠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기능상엔 큰 문제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 주시죠. 다들 그렇게 합니다."
PM: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소장님, 우리는 페인트를 칠하러 온 게 아니라 생명을 보호할 공간을 만들러 왔습니다. 소장님 말씀대로 주민들이 이 벽에 기대어 쉴 때, 혹은 지진이라도 나면 이 벽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건 실수나 오해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타협입니다. 16년 동안 이 일을 하며 수많은 현장을 봤지만, 안전과 타협하는 업체와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오늘부로 벽체 공사 전면 중지입니다."
소장: "공사 중지라니요! 그러면 전체 일정이 다 꼬이고 예산도 초과될 겁니다. NGO가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PM: "융통성은 원칙 안에서 발휘하는 겁니다. 오늘 이후로 재시공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계약 해지 절차를 밟겠습니다."
(3일 후, 현장 사무실 앞. PM, 소장, 마을 대표, 지방정부 건축 담당자가 마주 앉았다.)
PM: "소장님, 오늘 아침에 마을 대표님과 지방정부 건축 담당자님이 함께 오셨습니다. 이 보건소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공간인지 함께 확인하기 위해서죠."
소장: (비웃으며) "담당자님이야 원래 자주 오시던 분 아닙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습니까?"
건축 담당자: (엄중한 표정으로 서류를 꺼내며) "소장님, 오늘은 다릅니다. PM님의 요청으로 공사 진척도와 부실 여부에 대한 '공식 실사 보고서'를 작성 중입니다. 문제가 있는 상태로 덮어버리면 준공 허가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우리 지역 모든 공공 사업 입찰에서 귀사의 자격을 영구히 배제하도록 요청할 것입니다."
마을 대표: (주민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서며) "소장님, 우리 마을 청년들이 매일 순번을 정해서 현장을 지킬 겁니다. 우리를 속여서 보건소를 지을 생각은 마십시오. 당신들이 사용하는 시멘트와 철근이 정품인지 우리 눈이 매일 지켜볼 것입니다."
PM: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소장님, 저는 지금 소장님을 압박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현장이 이제 '투명한 유리상자'가 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굳이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습니다. 소장님이 부실을 덮으려 하면, 마을 주민들의 눈과 지자체의 서류가 즉시 제게 보고할 테니까요. 정직하게 시공하면, 제가 소장님이 이 마을에서 '정직한 건축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주민들의 감사 인사와 지자체의 추천서가 소장님께는 더 큰 자산이 될 겁니다."
소장: (주민들의 매서운 눈빛과 지자체의 서류를 번갈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알겠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철거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정품 자재 공수해 오겠습니다."
PM: "좋습니다. 그 결정이 소장님의 명예를 지키는 길입니다."
(지부 사무실. PM과 FM이 현장 보고서를 살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PM: FM님, 최근 보건소 현장의 자재 수급 상황이 왜 이렇습니까? 분명 2주 전에 기성금을 지급해 드렸는데, 왜 공사 진척도는 계속 제자리걸음인 거죠?
FM: (보고서를 넘기며) 맞습니다, PM님. 지난번 기성금 지급 이후에도 현장에는 자재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업체 측에 자재 발주서와 입고증을 요구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핑계를 대며 자료 제출을 미루고 있어요.
PM: 자재가 들어오지 않는다... 현장 소장이 대금을 다른 곳에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선입금된 자금이 우리 현장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새고 있다는 강력한 정황입니다.
FM: PM님, 당장 기성금 지급 중단하고 법적 대응 준비할까요? 업체가 자재 공급을 안 하는 건 계약 위반입니다.
PM: 준비는 해두십시오. 하지만 바로 법적 대응으로 가지는 마세요. 소장이 아예 부도를 내거나 잠적해버리면 결국 우리만 손해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건 '법적 승리'가 아니라 '보건소 완공'입니다. 업체가 이탈하지 않게 묶어두면서, 자금을 다시 현장으로 끌어올 방법을 찾읍시다.
(현장 사무실. PM이 시공사 소장과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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