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 입찰 프로세스와 투명성 확보

by중앙아시아 경계인
농수로 설치, 기초인프라 지원사업

1. 효율이라는 이름의 유혹, 왜 우리는 돌아가는가

장소: 키르기즈공화국 오시(Osh) 지부 사무실. 다음 달 진행할 기자재 구매 건을 놓고 PO가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답답한 듯 노트북을 닫았다.

PO: PM님,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장 조사 결과, 우리가 복잡한 입찰 공고를 내고 업체를 선정하는 대신, 제가 이미 알고 있는 성실하고 검증된 현지 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으면 구매 비용을 무려 15% 이상 아낄 수 있습니다. 시간도 3주 넘게 단축되고요. 그 큰 돈과 시간을 아끼면 다른 복지 사업을 하나 더 추진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비용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드는 입찰 프로세스를 고집해야 하는 겁니까?

PM: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가 의자를 돌려 PO를 마주 본다) PO님, 그 마음은 제가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사업비가 얼마나 어렵게 마련된 돈인지, 그리고 현지 주민들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네니까 그런 고민이 드는 거겠지요. 15%의 예산 절감과 3주라는 시간은 실무자 입장에서 정말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하지만 PO님, 우리가 쫓는 '효율'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PO: 시장 조사를 통한 직접 구매가 훨씬 효율적인 것 아닙니까? 입찰 준비하느라 낭비되는 수많은 서류 작업, 업체들 눈치 보고 공고 내고 기다리는 시간들이 너무 소모적입니다. 우리는 NGO고, 더 많은 혜택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핵심인데 말이죠.

PM: PO님이 말하는 건 '당장의 경제적 효율'입니다. 하지만 개발협력 사업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더 큰 가치는 바로 '슬롯적 자본'이지요. 우리가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는 순간, 시장은 우리를 '공정한 기회를 주는 곳'이 아니라 '누구와 친한지에 따라 계약을 따낼 수 있는 곳'으로 정의해 버립니다. 그 순간 우리가 그토록 쌓아온 '투명성'이라는 신뢰 자산은 휴지 조각이 되는 법입니다.

PO: 하지만 단 한 번의 예외가 전체 사업의 투명성을 완전히 무너뜨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사업 취지를 잘 아는 업체를 쓰는 게 품질 면에서도 더 안전할 수도 있고요.

PM: 당장은 안전해 보이지요. 하지만 그 15%의 비용 절감이 가져올 장기적인 기회비용을 고려해 보십시오. 우리가 원칙을 어기면, 다른 업체들은 우리를 향해 로비를 하거나 불만을 품게 됩니다. 언젠가 우리 사업에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하나 생기면, 그때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거봐, 거기도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더니 결국 지들끼리 다 해 먹는 곳이었어"라고 말할 겁니다. 15%를 아끼려다가 사업 전체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꼴이 되는 거지요.

PO: (한숨을 내쉬며) 우리가 얻는 15%의 경제적 이익이 시장 전체의 불신이라는 거대한 비용으로 돌아온다는 말씀이군요. 우리가 정당한 절차를 고수하는 게, 결국은 이 마을에 '정직한 경쟁이 보상받는다'는 가르침을 주는 행위라는 뜻인가요?

PM: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입찰이라는 느리고 불편한 길을 걷는 이유는, 우리가 떠난 뒤에도 이 마을의 조달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5%의 예산을 아끼는 것보다, 시장에 '여기서는 꼼수나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훨씬 더 거대한 슬롯적 임팩트입니다. 3주의 시간은 단순한 서류 처리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원칙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PO: 듣고 보니 제가 너무 근시안적으로 판단했네요.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만 따지다가, 더 중요한 신뢰의 시스템을 간과할 뻔했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절차가 바로 마을에 전하는 메시지라는 점, 잊지 않겠습니다.

PM: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맙습니다. 당장 내일은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불편함이 곧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오늘 자네가 한 고민은 아주 훌륭한 고민이었습니다. 그 고민 덕분에 우리 지부는 앞으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자, 다시 입찰 공고안을 작성해 보지요. 이번에는 어떤 업체가 들어오든 당당하게 우리의 원칙을 보여줍시다.


2. 정직한 입찰,신뢰를 사는 조달의 기술

장소: 키르기즈공화국 오시(Osh) 지부 사무실. 대규모 기자재 도입을 위한 입찰 공고를 앞두고, PM과 PO가 조달 리스트를 검토하고 있다.

PO: PM님, 이번 기자재 입찰 건 말입니다. 벌써부터 현지 업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우리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도, 지인들을 통해서도 "업체를 미리 정해달라"거나 "사양서 기준을 특정 업체에 맞춰달라"는 은근한 청탁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다들 아는 사이들이다 보니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네요.

PM: (서류를 천천히 넘기며) 그렇지요, 지역 슬롯가 좁다 보니 그런 압박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PO님,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는 게 아니라, 이 마을에 '공정한 경쟁의 표준'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여기서 흔들리면, 우리가 구축하려는 이 마을의 모든 시스템이 의심받게 됩니다.

PO: 저도 원칙대로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원칙만 내세우다가 지역 유력 업체를 적으로 돌리면 향후 사업 수행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입찰의 투명성을 지키면서도 그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방법이 있을까요?

PM: 그게 바로 조달의 '기술'입니다. 투명성은 단순히 "안 됩니다"라고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불만을 가질 수 없는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지요. 우선, 사양서를 특정 업체가 아닌 '국제 규격'에 맞춰 아주 세밀하게 작성해서 공표하십시오. 업체들이 로비를 할 여지 자체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PO: 아예 기술적인 진입 장벽을 객관화해서 로비의 논리를 무력화하라는 말씀이시군요.

PM: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입찰 설명회'를 공개적으로 개최하는 것입니다. 업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지, 왜 이 장비가 필요한지 상세히 설명하십시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면,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되지요.

PO: 회의적인 반응도 있겠지만,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함부로 청탁하기는 어렵겠네요.

PM: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평가위원단을 구성할 때 현지 전문가뿐만 아니라, 외부 NGO 관계자나 본부 파견자를 포함해 다면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십시오. 우리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결정된다는 사실을 마을 전체가 알게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임팩트'입니다.

PO: (기록하며) PM님 말씀을 들으니 조금 자신감이 생깁니다.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사업의 속도를 늦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업의 신뢰라는 단단한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군요.

PM: 바로 그것입니다. 정직한 입찰은 시간이 좀 걸리고 귀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당한 절차를 고수할 때, 정직한 업체들은 우리를 신뢰하게 되고, 주민들은 우리를 '공정한 파트너'로 인식하게 되지요. 숫자를 맞추는 것보다 이 신뢰를 얻는 것이 10년 뒤에도 이곳에 남을 진짜 유산입니다. 자, 이제 사양서 세부 기준부터 다시 다듬어 봅시다. 우리는 오늘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이 마을의 미래를 위한 '정직한 원칙'을 세우고 있는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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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머물겠다던 청춘의 다짐이 16년의 삶이 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2011년부터 거주 중이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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