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지표 압박과 현장 진척도 관리

지표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방법

by중앙아시아 경계인

사람을 관리하지 말고, 관계의 밀도를 관리하라 로컬 전문가나 팀원들은 단순한 부속품이 아닙니다.

1. 숫자로 쓴 보고서와 농민의 한숨

장소: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인근, 개발협력 지부 사무실. 창밖으로는 뜨거운 볕이 내리쬐고 있지만, 사무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PM인 '나'와 실무자 PO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수십 장의 보고서와 통계표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다.

PM: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PO님, 이번 반기 보고서 수치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지난 6개월간 농가 사육 두수 10% 증대를 목표로 달렸는데, 최종 집계 결과가 16%이군요. 산술적으로만 보면 대성공입니다. 본부에서는 이 숫자를 보는 순간 예산 증액을 검토하겠다고 박수를 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숫자가 전혀 기쁘지가 않네요.

PO: (마른 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쉰다) PM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 대비 160% 달성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들고 가서 기뻐야 하는데, 오히려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제 다녀온 마을의 풍경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요. 서류상으로는 분명 소가 16% 늘었는데, 정작 축사들을 둘러보면 뼈만 앙상한 소들이 사료통을 핥으며 울고 있거든요. 이게 우리가 달성한 '성과'의 실체라니, 정말 참담합니다.

PM: (의자를 뒤로 깊숙이 젖히며 천장을 바라본다) 개발협력의 역설이지요. 본부는 관리하기 쉬운 '수치'를 원하고, 우리는 예산을 받기 위해 그 수치를 정교하게 다듬어 제출합니다. 16%라는 숫자는 본부에는 성취일지 몰라도, 농가에는 생존의 위기입니다. 소를 늘리기 위해 농민들은 가지고 있던 소량의 자산까지 팔아치웠고, 이제는 부족한 사료값을 대느라 시장의 고리대금업자에게 손을 벌리고 있어요. 우리가 '소득 증대'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농민들의 '부채 증대'를 가속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PO: 맞습니다. 우리가 16%를 달성하기 위해 농가들을 독려했던 것이, 역설적으로 농민들을 빚더미로 네모는 결과가 된 것 같아요. 이 보고서가 본부나 외부 기관에 공유되어 '성공 사례'로 홍보되는 순간,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됩니다. 16%라는 숫자가 우리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만약 내년에 이 숫자가 유지되지 않거나, 그 뒤에 숨겨진 폐사율이 드러나면 누가 바카라임지나요? 우리는 지금 아주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PM: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PDM(성과지표관리체계)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별도의 생존 카드'를 두 장 꺼내야 합니다. 첫째는 '농작물 부산물을 활용한 발효 사료 제조 기술 보급'이고, 둘째는 '자체 회전기금을 활용한 저금리 소액 대출(Micro-credit) 프로그램'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서 전문가로서 버텨야 할 명분입니다.

PO: (당황하며) PM님, 지금 우리가 달성한 16%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팀원들은 번아웃 직전입니다. 공식 업무도 벅찬데, PDM에도 없는 발효 사료 기술 교육과 소액 대출 시스템 운영까지 추가하자고요? 이건 거의 두 개의 사업을 동시에 돌리는 수준인데, 본부에서 예산도 명분도 없는 일을 왜 벌이냐고 호통치면 어떻게 하죠?

PM: (단호하게 눈을 맞추며)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1년 뒤에는 영양실조에 걸린 소들이 집단 폐사해서 '사업 실패'라는 재앙이 우리를 덮칠 겁니다. 16%라는 지표 뒤에 숨겨진 그 고통을 방치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너무나 무바카라임한 처사이지요. 발효 사료로 사료 비용을 40% 절감시키고, 소액 대출로 고리대금의 금융 비용을 차단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우리가 만든 16%라는 숫자는 곧 무너질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PO: 결국 본부에 보고하는 16%는 본부를 안심시키기 위한 '방어용 지표'이고, 우리가 현장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기술 전수와 대출은 우리와 농민들을 지키기 위한 '생존용 지표'인 셈이군요.

PM: 바로 그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이 부분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로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합니다. 보고서의 행정 항목에는 '농가 사후 관리 및 사료 효율성 제고를 위한 금융-기술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이 초과 달성 지표가 우리 NGO의 자발적인 안전망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명분을 쌓아봅시다. 우리가 지표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PO: 알겠습니다. 16%라는 성적표를 들고 가서, 오히려 "이 성과를 유지하고 부실화를 막기 위해 우리 NGO만의 금융-기술 패키지 지원이 필수적이다"라고 역설하겠습니다.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숫자를 진짜 자산으로 만드는 법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PM: 그래요, 그것이 바로 전문가의 길입니다. 본부는 숫자를 보겠지만, 우리는 농가의 삶을 챙기는 실속을 얻읍시다. 오늘 바로 소액 대출 운영 규정 초안과 발효 사료 기술 전수 계획서를 정리해 주십시오. 16%라는 성적표 뒤에, 우리가 설계한 '기술'과 '금융'이라는 이중 안전망을 숨겨두는 겁니다. 우리가 당당해야 우리 사업도 끝까지 당당할 수 있으니까요.


2. 닫힌 문을 여는 시간, 평등이라는 이름의 숙제

장소: 지부 사무실. PM과 PO는 마을 지도들과 수차례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육 시작일이 계속 밀리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벽면 타임라인에는 ‘여성평등 교육’ 칸이 붉은색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

PM: (붉게 표시된 타임라인을 보며) 벌써 세 번째 연기군요. 마을 여성 교육을 위해 전문 강사까지 섭외해 두었는데, 정작 교육 일정이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마을의 남성 지도자들은 ‘농번기’를 핑계로 교육을 미루고, 여성들은 집안일과 육아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예산 집행 기한을 넘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약속했던 ‘여성 역량 강화’라는 목표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PO: (답답한 듯 의자에 깊숙이 기대며) 맞습니다. 지난번 마을 지도자 회의에서 간신히 동의를 받아냈는데, 막상 날짜를 잡으려니 ‘여자가 무슨 교육이냐’는 식의 은근한 반대가 느껴집니다. 심지어 강사님은 지방 도시에서 며칠을 머물러야 하는데, 숙소 문제부터 시작해서 마을 내의 미묘한 시선까지 고려하니 교육을 진행할 최적의 타이밍이 나오질 않습니다. 강사료는 계속 나가고, 우리 팀은 행정적인 마감 압박에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PM: 개발협력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마을의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일이지요.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이 교육을 통해 마을의 권력 구조나 가사 노동의 배분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일 겁니다. 우리가 타임라인에 쫓겨서 ‘강제성’을 띠게 되면, 오히려 이 사업은 마을 사람들의 반감만 사고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PO: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부에서는 이번 달까지 완료된 교육 결과 보고서를 올리라고 닦달합니다. 강사님께는 예의가 아니지만, 계약을 해지하거나 일정을 대폭 조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제가 어제도 촌장님 댁에 찾아가서 읍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우리 마을은 지금 바쁘다”는 말뿐이었어요. 정말이지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PM: (창밖의 마을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벽을 부수려 하지 말고, 벽에 창문을 내봅시다. 우리가 너무 ‘강의실’ 중심의 교육에만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마을 주민 모두를 한곳에 모으려니 일정이 어긋나는 겁니다. 강사님을 마을의 공동 공간이 아닌, 여성들이 매일 모이는 공동 우물가나, 아이들을 돌보는 방과 후 교실로 보내는 건 어떨까요?

PO: 아... 전체 집합 교육이 아니라, 현장 밀착형 ‘찾아가는 교육’으로 방식을 바꾸자는 말씀이시군요!

PM: 그래요. 마을 남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성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역으로 제안하는 겁니다. 그리고 강사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의 일상적인 고민(수확물 판매, 자녀 교육 등)을 평등하게 나누는 토크쇼 형식으로 분위기를 유연하게 가져갑시다. 그렇게 하면 주민들도 ‘교육’을 받는다는 부담감보다는 ‘우리 삶을 개선하기 위한 대화’로 받아들일 겁니다.

PO: (눈이 밝아지며) 그렇네요! 그러면 일정 조정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마을 전체를 모으는 건 어렵지만, 소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면 일정 분산이 가능하겠네요. 강사님께도 대단한 강연이 아니라, 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부탁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당장 강사님과 재협의하고, 촌장님께는 ‘공식적인 교육’이 아니라 ‘마을 복지 향상을 위한 간담회’ 형식으로 제안하겠습니다. 명분을 바꿔주면 그들의 거부감도 훨씬 줄어들 테니까요.

PM: 바로 그것입니다. 타임라인이 밀리는 것은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현장의 속도를 존중하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두를수록 사업은 목적지에서 멀어지지만, 우리가 한 걸음 물러나 유연하게 판을 짜면,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입니다.

PO: 알겠습니다. 지표 달성이라는 행정적 숙제에 갇히지 않고, 주민들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오후, 강사님과 함께 마을 여성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들을 다시 한번 답사하고 새로운 스케줄을 짜보겠습니다.

PM: 그래요. 우리는 이곳에 평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러 온 것이 아니라, 이곳의 사람들이 스스로 평등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촉매제가 되러 온 사람들이니까요. 문이 닫혀 있다면, 열릴 때까지 그 문턱에서 함께 기다리며 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진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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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머물겠다던 청춘의 다짐이 16년의 삶이 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2011년부터 거주 중이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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