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통찰]
때로는 업무라는 명분이 아니면 평생 발을 들이지 않았을 낯선 땅이 인생의 소중한 거울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파키스탄의 고도(古都), 라호르가 그랬다. 2022년, 비자를 받는 과정부터 가시밭길이었고, 치솟은 항공료와 까다로운 방역 절차를 뚫고 도착한 그곳은 35도를 웃도는 습하고 묵직한 열기로 나를 맞이했다. 평소 덥고 습한 날씨를 유독 힘들어하는 나에게 라호르는 도착과 동시에 체력적인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내 취향이나 편안함을 뒤로하고, 그 땅의 공기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라호르에서 만난 두 곳의 로컬 비영리단체(NGO)와 미팅을 하며, 나는 국제개발협력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금 뼈아프게 체감했다.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저개발국 정부에 외국의 비영리단체들(NGOs)는 결코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 내 인터내셔널 단체들의 활동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순수한 인도적 지원조차 자국의 정권을 위협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의심하곤 한다. 시민슬롯단체의 정당한 비판이 '방해'로 치부되는 그 닫힌 슬롯에서, 활동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검열당한다. 도움을 주면서도 감시받아야 하는 이 딜레마 속에서, 나는 활동가의 가슴에 새겨진 ‘순수함’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인지 새삼 느꼈다.
라마단 기간의 라호르는 묘한 정적과 활기가 공존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시장을 지키는 상인들, 그리고 그 무더위 속에서도 전통의상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보수적인 자부심을 보았다. 이토록 닫힌 도시의 골목마다 다국적 기업인 ‘우버(Uber)’ 앱으로 툭툭이를 불러 타고 이동하는 역설적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내 마음의 시계추가 2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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