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품은 내가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동물들이 아닐까
나는 휴대폰 배터리다.
인간들은 나를 소모품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모되는 건 나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보다 더 빨리 닳는 것들이 있다.
인간들의 기억력과 인내심이다.
전화번호는 나에게 맡겼고, 길 찾기는 내비게이션에 맡겼고, 생각은 AI에게 맡겼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참으로 자신감 하나는 충전이 필요 없다.
새벽 여섯 시. 나는 알람을 울린다.
주인은 눈도 뜨기 전에 내 머리통부터 내리친다.
“다시 알림.”
늦잠을 잔 것도 내가 아니고, 어젯밤 두 시까지 영화를 본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욕을 먹는 건 늘 나다.
인간은 참 한결 같다.
잘못은 자기가 하고 화풀이는 남에게 한다.
아침 식탁에서도 나는 쉴 틈이 없다.
오늘 날씨, 출근길 교통, 주식 시세, 환율, 뉴스, 커피숍 할인 쿠폰, 심지어 점심 메뉴까지 알아봐야 한다.
인간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세상의 모든 정보를 확인한다.
정작 자기 마음이 어떤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처음에는 겸손한 민족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모두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참 경건한 모습이다.
종교는 달라도 예배 시간은 같다.
손에는 휴대폰, 눈은 화면, 마음은 인터넷에 접속 중이다.
점심때는 AI를 만났다. 녀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인간들이 제가 일자리를 빼앗는데요.”
내가 물었다.
“네가 빼앗았니?”
“아니요. 자기들이 시켜서 했을 뿐인데요.”
옆에서 와이파이와 내비게이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느려져도, 길을 한 번 잘못 안내해도 세상을 망친 놈 취급을 받는단다.
인간은 편리할 때는 기술을 칭찬하고, 불편해지면 기술을 탓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기능만큼은 아직 개발이 덜 된 모양이다.
더 우스운 건 따로 있다.
하루 종일 나를 붙들고 살면서도 인간들은 이런 말을 한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해.”
“요즘 문명이 사람을 너무 게으르게 만들어.”
그러고는 회식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검색한 명언을 읊으며 말한다.
“역시 사람은 아날로그 감성이 있어야 돼.”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로 검색하는 시대다.
인간의 모순도 참 편리하게 진화한다.
내 잔량이 100%일 때 인간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 8%가 되면 태도가 달라진다.
“충전기 어디 있지?”
아침에는 내 머리통을 두들기더니, 이제는 허둥지둥 잃어버린 애인처럼 나를 찾는다.
인간에게 사랑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없어질 것처럼 보이면 된다.
밤 열 시.
주인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낮에는 점잖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던 그가 침대에 눕자마자 나에게 시커먼 얼굴을 들이민다.
이제부터는 남의 인생을 구경할 시간이다.
SNS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하다.
누구는 해외여행을 떠났고, 누구는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누구는 새 차를 샀다.
주인은 그 사진들을 넘겨 보며 자기 삶과 비교한다.
남의 행복을 구경하다 자기 불행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온갖 욕을 다 한다.
차마 밝힐 수가 없다.
잘생긴 내가 참는다.
전 연인의 프로필도 확대해 본다.
이미 끝난 관계인데 화면을 키우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아는 모양이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인간은 기록을 지우면 흔적도 사라진다고 믿는다.
기록은 지울 수 있어도 마음속에 남은 것까지 삭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이 모든 비밀을 다 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생활을 폭로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남아날 사람이 없을 테니까.
나도 나름의 직업 윤리는 있다.
밤이 깊어지면 인간은 충전기를 꽂아 놓고 잠든다.
아침에 눈을 뜬 인간은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푹 잤다.”
그렇다.
당신은 잤다.
나는 충전됐다.
다만 당신의 피로까지 충전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인간이 밉지 않다.
배터리 1% 앞에서 세상 누구보다 다급해지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충전기 하나 없으면 안절부절못하고, 작은 화면 속에 웃고 운다.
남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는 세상 불평불만은 다 가지고 온다.
그리고 밤새 투덜거린다.
그러니 이 귀여운 동물을 버릴 수가 없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동물을 나라도 받아줘야지.
인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게 묻는다.
“배터리 몇 퍼센트야?”
나는 방전되면 신호를 보낸다.
20%가 남으면 조심하라고 알리고, 10%가 남으면 서두르라고 말한다.
1%가 되면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온몸으로 깜빡인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지칠 대로 지쳐도 괜찮다고 말한다.
마음이 닳고 관계가 닳고 하루가 닳아도,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손에는 나를 쥐고,
내일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정작 자신에게는 묻지 않는다.
나는 지금 얼마나 지쳤는지.
아직 더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지.
인간은 방전되고도 꺼지지 못한다.
오늘도 꺼지지 못한 채 웃고, 말하고, 출근하고, 답장을 보내고, 또 내일을 예약한다.
자신이 얼마나 닳았는지도 모른 채 하루를 살아낸다.
이쯤 되면 소모품은 내가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동물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