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첫사랑은 진행 중

100개의 여의주 2

by슈팅스타

사랑병원의 복도에 가온테크의 사람들과 유주의 부모님이 도착한 뒤에야 진우는 의약품 냄새가 가득했던

사랑병원을 벗어날 수 있었어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겨우 신발만 벗은 채 소파에 쓰러지듯 누운 그대로 잠이

들었어요.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듯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어요

어스름한 어둠이 온 방안을 가득 채운 밤 10시. 그제야 눈을 뜬 진우는 번개처럼 하은이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을 보니 하은이의 연락은 없었어요

‘전화 많이 기다릴 텐데...'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해서 하은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다 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위로도 받고 싶었어요

어쩌면 하은이도 탈락이라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또 먼저 진우가 전화를 걸 수는 없었어요

하은이가 탈락의 아픔을 스스로 견뎌 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하은이는 소파에 무릎을 끌어안은 체 밤하늘의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그날, 하은이는 진우에게 합격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 체 급하게 전화를 끊고 자신의 합격을 손꼽아 기다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어요. 엄마 없이 자신을 홀로 키워주신 아빠는 하은이의 홀로서기와 같은 합격 소식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라며 크게 기뻐하셨어요.

그리고 동네에 소 한 마리 잡아서 잔치를 하겠다고 … 진짜 그러고도 남을 아버지.. 였어요

하은이는 아버지의 기뻐하는 모습에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인스타에 합격 문자가 담긴 스크린숏을 업로드

했어요.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들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 댓글과 하트가 날아왔어요.

그리고… 운명의 덫에 걸린 듯 '공주. 유 ‘라는 아이디가 생각이 났어요. 하은이는 마치 주술에 걸린 듯 검색창에

유주의 아이디를 쳐서 들어가 보게 되었어요. 우연히 보게 된 유주의 피드에는 투명하다 못해 핏기 하나 없는

새하얀 팔에 링거 바늘과 주사 자국이 선명하게 박힌 사진 한 장이 올라와 있었어요

#사랑병원 #이별 #예고 #별이 된 너

하은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어요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스토리에 진우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어요. 사랑병원 응급실 접수처 창구 앞 어깨를 웅크린 채 펜을 꾹꾹 눌러 서명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심장과 허파가 제 기능을 잃은 듯 숨을 쉬기 조차 힘든 순간이었어요.

뭔가 단단한 물건으로 머리와 가슴을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이 몰려왔어요.

도대체 유주와 진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이 된 너라를 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왜 진우가 유주와 유주의 아이의 일에 함께 하고 있는지 ,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머릿속에는 말도 안 되는 과거의 파편들이 추악한 드라마처럼 재생되는 듯했어요.

태오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유주의 말을 듣고 진우의 의중을 떠 보기 위해 물었던 질문에

“유주의 뱃속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든 상관없이 난 다 끌어안고 유주와 아이 모두를 사랑하겠다던

그날밤의 이야기도. 강릉의 여름 바닷가에서 진우가 행복한 얼굴로 전화를 하던 주인공이 유주일 수도 있다는

의심도, 그리고 소요헌 진우의 방 그 사적인 공간에서 발견된 그녀의 헬멧

모든 조각이 추잡한 과녁을 향해 조작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진우와 유주가 아이를 떠나보내는 고통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하은이를 더 아프게 했어요.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무엇보다 진우의 축하를 받고 싶었던 날 내 유일한 친구이자 이제는

내 남자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은 얼마 가지 않아 하은이 스스로 비참한

자괴감으로 바뀌고 있었어요. 어쩌면 하은이는 제 상처와 결핍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진우라는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사랑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미성숙하고 덜 자란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해서 네가 왜 유주와 유주의 보호자로 그 긴 고통을 함께 해야만 했는지 당장 설명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어쩌면 서로에 대한 오해는 진우도 마찬가지였어요. 병원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진우는 거짓말처럼 지독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어요. 하은이에게 변명처럼 둘러댔던 거짓말이 온몸의 독소처럼 번져 불덩이 같은 고열과 통증으로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어요.

자신이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국제학교에 탈락한 줄로만 알았던 진우는 하은이가 더 힘들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고 그리고 서로에게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요헌에 계신 어머니에게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온 것도 며칠이 지난 오후였어요

“진우야 하은이 아버님이 글쎄 딸내미 국제학교 교사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고 동네 마을 경로당에 잔치를 크게

베푸셨어. 너도 알고 있지? 하은이 급하게 부산으로 이사해야 된다고 하시던데 진우 네가 가서 하은이 이사도 좀

돕고 해”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진우는 더 이상 괜찮은 척을 할 수가 없었어요. 분명 합격하면 둘만의 파티를 하자고 하였고 그리고 합격자 발표날 전화로”괜찮아?” 고 물었을 때 긴긴밤 내내 작은 고양이 소리에도 잠을 깨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서글프게 아파했던 하은이였어요.


서로는 서로에게 서운함으로 상처 내기에 바빴어요

“내가 생각한 사랑은… 매 순간 함께 하는 거였어. "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걷고 아플수록 내게 기댔다면 나도 너의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었어"

“나는 정말 온통 네 생각만 했어. 구하은 네가 안 다칠 생각 이 복잡한 세계에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너만은 내 온 힘을 다해서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게 내가 널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어. 내 온 삶을 통틀어 내 자전축은 이 세상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구하은 너 하나가 유일하다고 믿었으니까"

서로는 서로에 억눌린 감정을 쏟아냈어요

“합격했다는 소식. 나한테 왜 말하지 않았어? 나를 그토록 밀어내고 일주일 넘게 왜 숨어 버린 건데?"

“하루종일 아파서 누워 있는 내내 온통 네 생각뿐이었어. 네가 떨어졌을까 봐 혼자 울고 있을까 봐 하루

종일 네 걱정만 했다고"

“네가 그 아이와 아무 상관없는 거.. 머리로는 다 알아. 다 아는데 그래도 네가 너무 미워"

“처음부터 너랑 그 강릉 여행을 떠나지 말걸"

“너무 후회 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걸. 그랬다면 너한테 이토록 처절하게 실망하지도 않았을 테고 너를 이렇게 더럽게 미워하지도 않았을 거잖아"

만약,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이 이 모든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리고 나면 우리의 젊은 시절은 조금 더 괜찮았을까요?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