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퍼 넣어라!"
두 귀를 때리는 노모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빈 봉지에 퍼 담던 세제가루를 마저 퍼 담는다. 전기가 끊어지고 1년여 넘게 비워 두었던 아파트의 냉기가 쌓인 먼지조차 얼릴 기세다. 피붙이들이 틈틈이 방문하여 살림도구를 가져갔지만 울대 너머 올라오는 헛기침 사이로 보이는 살림살이는 그대로다. 8여 년도 못 채운 냉장고도 아직 새것이고 4인 식탁도 고스란히 새것이다. 거실에 앉은 소파며 유리 장식장도 저들만 멀쩡하다.
찬장에 칸칸이 쌓여 있는 도자기 그릇들은 명절에는 다 나와서 고급스럽게 밥그릇 국그릇 노릇을 했고 수저는 어느 해인가 정이 젊은 날에 장만해 준 거다. 다 떠나고 혼자 부모와 살 때니까 20여 년도 더 되었다. 그 수저만은 뒤에도 바꾸지 않고 사용했다. 찬장마다 이쁜 그릇은 애초에 들여놨던 이들이 챙겨 갔나 보다. 눈물깨나 쏟았을 테다. 옷장 이불장도 열어본다. 겉옷 몇 가져간 듯한데 이불은 고스란히 있다. 내 부모 물건인데 코도 묻을 수 있다. 홑이불 석장을 개어서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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