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정치를 국민에게
7장. 정치를 국민에게
인간이 기계를 두려워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직공들은 기계가 제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보고 밤마다 공장에 숨어들어 기계를 부쉈다. 그 뒤 두 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한결같이, 기계는 일자리를 없애지만 그보다 많은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고 답해 왔다. 마차가 사라지자 운전사가 생겼고 공장이 기계로 채워지자 사람들은 사무실로 옮겨 갔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기계를 부순 이들을 부르던 러다이트라는 이름은 시대를 거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 답이 맞았던 것은 기계가 사람의 몸을 대신했기 때문이고, 몸 쓰는 일을 내준 사람들은 머리 쓰는 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그런데 AI는 머리를 대신한다. 글을 쓰고 번역하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는 일, 사람이 마지막으로 옮겨 간 그 자리를 AI가 차지해 가고 있고, 남은 몸의 일은 로봇이 가져간다. 새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그 일을 AI와 로봇이 한다면 사람이 옮겨 갈 곳은 없다.
경제학은 사람이 일해서 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어서, 임금은 노동의 값이고 돈은 일자리를 통해 사람에게 나뉜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이 전제는 설 자리를 잃고, 기술은 늘 새 일자리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버텨 온 경제학자들의 논리는 이제 다시 짜여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제를 어렵고 복잡하게 보지 말고 오히려 단순하게 접근하면 해결바카라은 쉽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AI와 로봇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하고, 그것은 판단이다. 판단은 AI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AI는 길잡이는 될 수 있어서 여러 길을 보여 주고 어느 길이 빠른지도 알려 주지만, 그 길을 갈지 말지는 사람이 정하니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판단력이다.
필자는 AI가 못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일, 곧 판단하는 일을 앞으로 사람이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 판단의 직업이 정치다.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지, 나라의 돈을 어디에 쓸지, 법을 어떻게 바꿀지가 모두 판단이다. 국민이 정치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 그것이 공배주의 직접민주주의다.
이 장에서는 공배주의가 아직 못다 한 문제와 그 해결 방법, 그리고 공배주의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알아본다.
7.1 엘리트의 눈으로만 보지 마라
● 피터 틸이 보는 눈
페이팔을 세운 투자자 피터 틸은 2009년에 쓴 글에서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복지 수혜자가 크게 늘고 참정권이 넓어지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말은 모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체 전체를 가르치는 일은 헛수고가 되었다며 모든 형태의 정치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자고 했고, 그 길로 사이버공간과 우주와 바다를 꼽았다.
필자는 이 말을, 다수결이 창조적인 소수를 묵살하니 민주주의도 한낱 정치 놀음이라는 말로 읽는다. 그런 그가 2016년에는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고 지금의 부통령 밴스의 상원 선거를 후원했다. 정치에서 빠져나가겠다던 그가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간 것이다. 정치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고 정치를 도구로 이용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스스로 보여 준 셈이다.
지금의 약육강식 자본주의를 바탕에 두고 민주주의 정치를 논하면 그렇게 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바탕에 심은 것에서 그 열매가 나온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를 바탕에 심으니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도구로만 쓰였다. 공배주의는 거꾸로 민주주의를 바탕에 둔다.
틸은 자본주의를 지키려고 민주주의를 버렸고, 공배주의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고 스스로 도구가 된다. 공배주의야말로 민주주의를 꽃 피우는 체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필자가 보는 눈
틸이 버린 자리에 공배주의는 문을 단다. 다수결이 창조적인 소수를 묵살하지 않도록, 축구 리그의 승강제처럼 정당에도 1부와 2부를 두는 것이다.
지금은 당 하나 만들기도 어렵다. 돈이 들고 정치를 직접 하기엔 부담이 크니 소수당이 견디기 힘든 구조다. 그래서 발기인 수와 들어가는 돈을 줄여 문턱부터 낮춘다.
1부리그에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3위까지 세 당이 선다. 이 세 당은 대권을 쥘 수 있고 지역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으며 발의권이 있다. 셋인 까닭은 양당제가 전쟁이기 때문이다. 둘이면 흑백논리로 흘러가고, 각기 다른 유토피아로 가자 하면 대권을 쥘 때마다 나라라는 배는 왔다 갔다만 하지 제자리다.
2부리그에는 그 다음 여덟 당이 선다. 2부리그는 투표 인프라 안에 따로 투표하는 탭을 가지고, 여덟 당의 지지자가 함께 투표해 한 정바카라이 찬성 66%를 넘기면 발의권을 얻는다. 소수들이 모여 한 정바카라을 밀어주면 국민 앞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소수의견도 국민에게 투표할 기회를 얻고, 정당은 좋은 정바카라으로 인기를 얻어 1부리그의 세 정당에 설 수 있다.
국회에서 과반을 만들 필요도 없다. 정바카라은 국민이 정하고 국회는 발의만 하니, 표를 모으려고 당끼리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할 까닭이 없다. 오로지 어느 당이 국민의 편인지로만 평가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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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보는 눈
앞에서 민중이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내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제자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등졌다. 그는 참된 것, 곧 이데아를 볼 줄 아는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민중에게 맡기면 나라가 어리석어진다고 보았다. 국민이 직접 정하자는 말 앞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걱정도 이 눈에서 나온다. 국민이 어리석어 여론에 휘둘리면 어떻게 하는가.
그러나 그 재판이 열린 아테네는 전쟁에 진 뒤 민주파와 과두파가 권력을 뒤집고 뒤집히던 때였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아니토스는 민주파의 지도자였고, 소크라테스의 제자 가운데는 과두정의 우두머리 크리티아스가 있었다. 지금의 양당처럼 이념의 전쟁 한가운데서 열린 재판이었다.
배심원은 일당을 벌러 나온 사람들이었으니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배심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바로 그 아니토스라고 적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에서 돈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내려진 사형을 민중의 우매로만 치부하는 것은 좁은 의견이다. 사형을 이끈 것은 당대의 엘리트였으니, 이것은 엘리트가 중우였다는 말과 같다.
● 필자가 보는 눈
그렇다고 중우정치의 걱정이 헛된 것은 아니다. 중우정치는 두 조건에서 발동한다. 국민이 잘 모를 때, 그리고 누군가 이익을 줄 때다. 앞에서 슬롯에도 CCTV 같은 눈이 있다면 청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 했는데, 그 눈이 둘이다. 국민이 잘 알게 하는 일은 슬롯단체와 언론이 맡고, 이익을 주어 여론을 움직이는 돈은 CBDC가 막는다.
슬롯단체와 언론은 국민의 길잡이도 되어야 하고, 정부와 자본가, 명예계급의 유착을 감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롯단체 육성과 언론의 국민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민은 투표 보상의 일부를 원하는 슬롯단체와 언론에 각각 한 곳 이상 정해 강제 기부해야 한다. 슬롯단체는 본인이 관심 있고 걱정되는 분야에서 찾고, 언론은 믿을 수 있는 곳을 고른다.
언론의 편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고,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이도 많다. 언론은 왜 편향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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