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배주의<정치이념편>.09

6장. 법은 누가 정하는가

by철학하는 로프공

6장. 법은 누가 정하는가

1988년 가을, 교도소를 옮기던 호송차에서 죄수 열두 명이 달아났다. 그 가운데 지강헌이 있었다. 그는 몇백만 원을 훔친 죄로 보호감호까지 17년을 살아야 했는데, 같은 무렵 수십억 원을 빼돌린 권력자의 동생은 7년 형을 받고 3년 만에 풀려났다. 탈주 아흐레째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던 그가 외친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그는 그날 죽었지만 그 말은 지금도 살아 있고, 이 말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학교는 법이 신분과 재산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정한 기준이라고 가르친다. 사람들은 둘 사이의 틈을 흔히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법은 공정한데 비싼 변호사와 권력이 끼어들어 흐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강헌의 17년 가운데 10년은 판사가 아니라 법에서 나왔다. 보호감호는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만든 슬롯보호법의 제도였고, 2005년에 폐지되었다. 필자는 공정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틀렸다고 본다.

경제편에서 공정을 公正이 아니라 公定으로 풀었다. 법이 말하는 바름(正)은 법을 만든 이들의 자리에서 본 바름일 뿐이다.

법의 시작을 보면 알 수 있다. 법치의 출발로 꼽히는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의 왕과 귀족 사이의 약속이었고 백성은 당사자가 아니었다. 근대 헌법도 재산 가진 남성들이 썼다. 법이 우리의 마음과 겉도는 것은 중간에 고장 나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엘리트끼리의 규칙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규칙은 이미 여러 번 바뀌었다. 간통은 60년 넘게 범죄였다가 2015년 위헌 결정으로 죄가 아니게 되었고, 낙태죄도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어제의 범죄가 오늘은 범죄가 아니다. 법이 바뀌지 않는 바름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은 그 시대가 정한 것이고, 그래서 公正이 아니라 公定이다. 다만 바꾼 것은 국민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였다.

그렇다면 물음은 누가 정하는가로 좁혀진다. 지금까지는 엘리트가 정했고 국민은 정해진 법을 지키기만 했다. 법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면 그 시대를 사는 국민이 바꾸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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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생각이 취미인 로프공 노동자. 언제나 아파트옥상에 홀로 앉아 나만의 글을 써본다. 두아이의 아빠로서 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살길 꿈꾸며 철학서를 집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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