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우리가 믿는 지식의 오해
3장. 우리가 믿는 지식의 오해
필자는 20년 차 로프공이다. 로프공이 하는 일은 여러 가지인데, 필자는 지금 코킹 작업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다. 창틀과 벽 사이의 틈을 메운 실리콘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부분제거하거나 완전제거한 뒤 새 실리콘을 입히는데, 이 작업을 코킹이라 한다.
이 일을 하면서 필자가 감탄한 것이 부분제거다. 늘 작업을 하면서도 이것을 생각해 낸 사람은 천재라는 생각이 들고,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한국이 최초이자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가 난 자리를 바로 보고 그곳만 수리한 뒤 전체를 실리콘으로 코팅하면, 일의 강도가 낮아져 작업자도 편하고, 작업 시간이 줄어 값을 내릴 수 있으니 고객도 좋아하며,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니 환경에도 좋다. 필자는 이것을 획기적인 해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고객과 통화나 채팅으로 상담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헌 실리콘을 다 벗겨 내느냐는 것인데, 필자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궁금한 것을 AI에게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오니 코킹 작업을 물어보았는데, 코킹에 대한 설명 뒤에 시공업체를 부를 때의 팁이라며 알려 주는 내용을 보고 황당했다. 팁의 첫째가 완전제거를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이 상술이라고 반박한다.
완전제거를 주장하는 업체들은 물이 새면 흔히 코킹이 삭아서 그렇다고 하고, 그러니 낡은 실리콘을 모두 뜯어내고 새로 발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뛰는 필자가 보기에 전체가 삭은 경우는 드물다. 주로 보이는 문제는 실리콘이 삭은 것이 아니라 실리콘과 콘크리트, 창틀의 접착면이 제대로 붙지 않아 그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현장에 가면 자주 보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완전제거가 상식이 된 데에는 돈을 원하는 코킹업자들의 상술이 있다. 그들이 완전제거를 선전해 온 글과 말이 모여 AI가 권하는 지식이 된 것이다.
필자는 완전제거를 원하는 고객에게 오히려 부분제거를 권한다. 지붕이 새면 헌 지붕을 뜯고 새로 얹느냐(완전제거), 헌 지붕 위에 새 지붕을 얹느냐(부분제거)의 차이라서, 기능은 같고 미관의 차이뿐이라고 설명한다. 필자가 다녀 본 업체들은 모두 완전제거 값을 부분제거의 두 배로 받았으니, 필자는 벌 돈을 스스로 반으로 깎고 있는 셈이다.
고객에게는 기능이 같다고 말하지만, 부분제거의 장점은 싸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뜯어낸 자리에서 접착면이 떨어진 모습이 그대로 보이니 문제가 드러나고, 남겨 둔 낡은 실리콘이 멀쩡하다는 것은 그 아래 기반이 건강하다는 증명이 된다. 나중에 덧바른 실리콘이 떨어지더라도 밑바탕이 남아 있으니 안전하다.
완전제거도 당장의 문제는 해결하지만, 원인을 고친 것이 아니라 리셋한 것이다. 새로 바른 직후에는 모든 곳이 다 붙어 보이지만 어느 쪽 접착면이 제대로 붙었는지는 알 수 없고, 근본 원인이 보이지 않았으니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때마다 또 처음부터 다시 한다. 리셋은 문제의 뿌리를 없애지 못하고 보이지 않게 가릴 뿐이다.
상식이라 믿는 것에 누군가의 셈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 코킹의 완전제거가 그랬다. 그렇다면 '중우정치'라는 말은 어떨까. 신분제를 없앴다는 자본주의도, 폭력을 없앤다는 법치주의도 혹시 이 리셋을 한 것은 아닐까.
3.1 엘리트가 만든 상식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아테네의 배심원 약 500명이 그에게 사형을 내렸고, 이 일은 민중이 다스리면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죽인다는 증거처럼 오래 이야기되어 왔다.
민중이 다스리면 나라가 어리석어진다는 '중우정치'라는 말도 이 불신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500명이 누구였는지 따져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아테네의 시민은 성인 남성뿐이었고, 여성과 노예와 외국인은 들어가지 못했다. 배심원은 그 시민 가운데서도 스스로 신청한 사람들의 명단에서 그날 추첨으로 뽑혔다. 배심원에게는 일당이 나왔으니 일거리가 없는 가난한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많이 나왔다. 그 500명은 시민 전체도 아니었고, 시민을 고르게 담은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날의 판결 하나가 민중 전체가 어리석다는 말이 되었다. 민중을 어리석다고 본 생각의 뿌리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과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당대의 엘리트였다.
중우정치라는 말의 주인은 민중이 아니라 엘리트다.
일부가 전체의 이름을 얻는 일은 지금도 되풀이된다. 우리는 뉴스와 대중매체에서 여론조사를 자주 접한다. 정당의 지지율이 오르내리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내리고, 정바카라의 찬성과 반대가 오가는 여론조사들은 국민의 뜻인 양 뻔뻔스레 오차범위를 논하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여기에는 숨은 맹점이 하나 있다. 여론조사가 세는 것은 성실히 조사에 응한 사람들인데, 그 가운데 중도 성향의 사람은 적다. 중도는 나서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다. 외면하거나, 관심을 가지더라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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