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데이터 좀 팔아본 사람들

05. 데이터 좀 팔아본 사람들


데이터 사업을 해본 사람을 채용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이 업계는 생각보다 좁다.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를 알고, 예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했거나 경쟁 PT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데이터 행사에 가면 고객만큼이나 데이터를 파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회사는 달라도 하는 일은 비슷하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실패를 하고,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몇 마디만 나눠도 금세 친밀감이 생긴다. ‘아, 이 사람도 같은 일을 하는구나’ 그런 동질감이 있다.

처음 데이터를 팔러 가면 대부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설명하려고 한다. 정보를 얼마나 전달했는지로 미팅을 판단한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머릿속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놓는다. 100을 알고 있는데 90만 말하고 나오면 아쉽다. ‘그 이야기도 할걸’, ‘이 기능도 설명할걸’ 돌아오는 길에 혼자 복기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고객이 듣고 있는지, 지루해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인지 살피지 못한 것이다. 고객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는데, 핸드폰을 자꾸 보는데 나는 설명이 잘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한참을 설명하고 나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말하는데 에너지를 모두 써버려 고객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다. 질문을 듣기보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회의는 데이터를 설명하는 자리였지만 고객의 질문은 데이터 밖에서도 시작된다.

“마이데이터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떠세요?”

“카드사 한 곳의 데이터만으로 충분할까요?”

“빅데이터보다 스몰데이터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계속 나온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기 쉽다. 얼굴이 빨개지고 ‘이 질문에 왜 답을 하지 못했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회사를 대신해 설명하러 나왔으니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회사로 돌아와 공부했고, 다음에는 같은 질문에 막히지 않으려고 메모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무엇을 물어봐도 막힘없이 대답하는 사람이 되는 것.

지금 돌아보면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가 가지고 간 데이터 자체에 정신이 팔려 정작 고객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업 초보들은 ‘내가 얼마나 잘 설명했는가’에만 신경을 쓴다. 고객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는 그다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약은 내가 가장 똑똑해 보였던 날보다, 많이 들은 날, 솔직했던 날에 더 많이 성사된다.

‘그 부분은 제가 정확히 확인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런 내부 수요가 있으셨군요’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면 오히려 고객의 신뢰를 받는다. 계약은 해박한 지식보다 신뢰에서 시작된다. 약간의 어수룩함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데이터 사업을 하다 보니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는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고객이 많이 말하게 만드는 사람이 더 좋은 영업이라는 걸 배웠다.


미팅이 많아질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내가 얼마나 잘 말했는가’ 보다 ‘상대가 이 시간을 가치 있게 느꼈을까’가 더 중요해졌다. 한 시간의 미팅이 끝났을 때 고객이 ‘오늘은 얻어가는 게 있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게 좋은 미팅이다.

계약 체결 여부는 분위기에서 먼저 시작된다. 회의 가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할수록, 꼭 성사시키고 싶은 계약일수록 회의가 진지하게 시작된다. 데이터 회의니까 더 그렇다. 숫자 하나, 칼럼 하나, 기준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회의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상사의 지시로 참석한 사람도 있고, 데이터를 잘 몰라 긴장한 사람도 있다. 반대로 견적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조금씩 긴장한 상태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회의실은 자연스럽게 딱딱해진다. 제안하는 쪽에서 자기 말만 하는 것처럼, 고객들도 자기 역할에 맞는 준비된 멘트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딱딱한 회의에서 작은 웃음 하나가 회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다. 고객이 먼저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먼저 회의를 편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좋은 분위기는 친절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웃음이 많은 회의가 가능할까? 의외로 가능하다.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한번 웃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물론 모든 사람이 웃지는 않는다. 열 번 시도하면 다섯 번은 진짜 웃고, 세 번은 관계를 위해 웃어주고, 두 번은 끝까지 웃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병의원 데이터를 분석하는 A기업과 미팅한 적이 있다. 멀리서 찾아갔는데 물 한잔 주지 않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같은 형식적인 인사도 없었다. 명함을 주고 인사를 드리는데, 명함이 나오지 않았다며 회의에 참석한 4명 모두 명함을 주지 않았다. 내가 건넨 명함도 대충 받아서 바카라상 한쪽에 놓았다. 자리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꺼내기도 전에, 상대는 곧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우리 지금 엄청 바빠. 궁금한 거 물어볼 테니까 대답해’라고 분위기로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회의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잡담도 없고, 농담도 없고, 필요한 질문만 오가는 회의.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질문리스트에 체크하는 일은 모두 끝났다. 이상하게도 이런 회의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꺼내놓을 정보의 범위를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은 우리에게 진짜 고민을 말하지 않았다. 데이터와 관련해 되냐 안 되냐, 있냐 없냐, 어떻게 생성했는지만 물었다 우리는 어땠을까? 질문받은 것에만 대답했다. 우리는 더 많은 솔루션을 줄 수 있지만 굳이?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타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추가적으로 어떤 것들이 가능한지는 말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팔아본 사람들은 회의를 시작하는 방식이 다르다. 데이터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사람부터 편하게 만든다. 뭘 꺼내놓고 같이 먹기도 하고, 언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지 싶게 일상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도 한다. 상대 회사의 최근 뉴스나 프로젝트에 대해 먼저 묻기도 한다. 회의실에 먼저 나가 맞이하고, 음료를 한잔 권하고, 인사를 건넨다.

별 것 아닌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세상에 불필요한 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왜 이렇게 하는 걸까? 그런 몇 분의 시간이 회의의 분위기를,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고객은 질문을 더 하기 시작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회의는 데이터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자리가 된다. 경쟁사에서 동료가 되기도 한다.

데이터 사업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예의범절의 차원이 아니다. 이건 일종의 작은 전략이다. 데이터 사업인들은 이 사실을 안다. 계약은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고객이 말하고 싶어 할 때는 듣고 고객이 설명하기 귀찮아할 때는 알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 많이 안다고 자만하지 않고 계속 배우는 것, 겸손한 자세로 듣는 것.

사업은 사람 간의 관계다. 데이터로든 애티튜드로든 사람 자체의 매력으로든, 고객의 마음을 누가 열었는지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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