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데이터는 결국 사람이 판다

04. 데이터는 결국 사람이 판다


“데이터가 좋으면 잘 팔리지 않을까?.”

데이터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카드 소비 데이터가 가장 많고, 분석도 잘했고, 가격경쟁력도 있다. 좋은 데이터만 만들면 고객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같은 데이터를 들고도 어떤 사람은 계약을 따내고, 어떤 사람은 한 건도 팔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데이터를 사는 사람은 데이터만 보고 선택하지 않는다. 데이터와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 그 사람이 속한 회사를 같이 고려한다.


데이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처럼 직접 타볼 수도 없고, 커피처럼 맛을 볼 수도 없다. 결국 고객은 데이터를 설명하는 사람을 믿고 계약한다. 이것이 빅데이터플랫폼을 만들게 되는 배경이 되고, 동시에 플랫폼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 사람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 계약이 시작된다. 데이터사업에 있어서는 기술보다 신뢰가 먼저다.


한동안 나는 팀원들에게 업무를 직접 보여주면 금방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객 미팅에도 함께 데려가고, 발표도 대신해주고, 어려운 협상도 옆에서 도와줬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깨달았다. 보고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결국 직접 부딪히고, 실패하고, 복기하면서 성장한다. 옆에 누군가 있고 그 사람이 말을 하는 순간 오고 가는 대화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내 일 같지 않아서다. 사업은 정답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판단을 쌓아가는 일이다.


사업에서는 복기가 중요하다. 성공 사례는 대부분 운이 좋았던 경우가 많지만, 실패한 계약에서는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하기 싫지만 수주하지 못한 계약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된다. 가능하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왜 어려웠는지,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꿀지, 이런 대화들이 다음 계약을 만든다.


데이터사업을 오래 하다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잘하는 사람들은 “안 됩니다.“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 데이터가 없을 수도 있고, 일정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이 듣고 싶은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 아니다. 대신 무엇이 가능한 지다.


“비슷한 데이터를 제안드릴까요?”

“조금 다른 방법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내일까지 확인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말은 달라질 수 있다. 고객은 데이터를 기억하기보다 그 태도를 기억한다.


이메일 하나에도 차이가 드러난다. 고객이 보낸 메일에 하루가 지나도록 답이 없으면 관심이 식기 시작한다. 반대로 당장 답을 줄 수 없어도 “확인하고 오후까지 회신드리겠습니다.“라는 한 줄이면 신뢰는 유지된다. 사업은 작은 신뢰가 반복되어 만들어진다.


견적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격표만 보낸다. 하지만 고객은 숫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원한다.


“현재 예산이라면 이 정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산을 조금 늘리면 이런 분석도 가능합니다.”


고객이 의사결정을 쉽게 만드는 사람은 가격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설명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라도 늦게 도착하면 좋은 데이터가 아니다. 완벽한 보고서도 고객의 의사결정이 끝난 뒤 도착하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 마감일을 고객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잡는다. 데이터의 가치는 정확성과 속도가 함께 만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고객을 만나기 전에는 반드시 준비한다. 회사 홈페이지를 보고, 최근 기사를 읽고, 올해 어떤 사업에 집중하는지 찾아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 데이터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


데이터를 설명하기 전에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10년 넘게 데이터사업을 하면서 한 가지는 확신하게 됐다. 데이터는 결국 사람이 판다.

좋은 데이터를 만드는 회사는 많다. 하지만 고객의 고민을 이해하고, 빠르게 답하고, 준비하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국 고객은 데이터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이 데이터를 팔고 사람이 플랫폼을 만든다. AI시대에 사람을 넣어 돈을 번다고 하면 우스워지지만 역설적으로 AI시대에 너도나도 오프라인 공간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사람들은 AI가 세상을 ‘가볍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AI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땅이 필요했고,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고, 더 큰 건물이 필요해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물리적인 기반의 가치가 커진 것이다.


데이터 사업도 비슷하다. AI가 SQL을 작성하고 리포트를 만들고 인사이트를 요약해 준다. 하지만 정작 계약은 누가 따오는가? 고객이 왜 이 데이터를 사야 하는지 누가 설득하는가? 고객도 몰랐던 문제를 누가 발견하는가?

AI가 발전할수록 데이터를 ‘파는 사람’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있을 건 있어야 하고 필요한 건 언제나 필요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