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유니폼이 되어버린 스트릿 로고

Part 2 - 3

by룰루라임

님아, 그 길을 가지 마오: 스트릿 브랜드


최근 스트릿 브랜드가 인기가 많았는데, 이런 브랜드는 다른 것과 달리 그 뿌리와 태도를 이해해야 제대로 소비할 수 있다. 본질 자체가 매니악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슈프림, 스투시 같은 스트릿 웨어는 주류에 저항하거나, 주류에 낄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하위문화(서브컬처)로 태어났다. 국내의 아이앱 스튜디오도 공연 스태프들이 입을 티셔츠를 만들었다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게 돼서 시작된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보고 "올~ 너도 이거 아는구나?!" 하며 눈인사를 건네는, 취향의 마패 같은 것이었다. 마패가 아무나 다 갖고 있으면 더 이상 마패가 아니듯, 이 옷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원단이 좋거나 기능이 뛰어나서 입는 옷이 아니다. 희귀하다는 사실 자체가 값어치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 희귀성이 사라지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옷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런 브랜드는 아침에 외출해서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길에서 많아야 한두 명 마주치거나 아예 안 보여야 그 멋과 본질이 산다.


구체적으로 그려보자. 최 부장님께서 "나도 유행하는 거 알아", "나 아직 안 늙었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회사 워크숍에 원래 입던 바지와 구두에 슈프림 로고가 박힌 후드티만 얹어 입고 오셨다고 해보자. 나머지는 그대로인데 로고 하나만 붙어 있으니, 그 옷이 내 것이 아니라 잠깐 빌려 입은 것처럼 보인다. 젊어 보이려고 고른 옷이 오히려 애쓴 티만 남기는 셈이다. 안 어울리는 조합은 이렇게 늘 티가 난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인천공항에 나가보면 이 모순이 한눈에 보인다. 출국장에 아이앱 스튜디오나 스투시 로고를 단 사람들이 셀 수 없이 지나간다. 다들 여행 가는 길에 제일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 입었을 텐데, 정작 공항 전체가 그 로고로 뒤덮여 있으니 아무도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이렇게 너도나도 같은 로고를 걸치고 모이는 순간 그 옷은 이미 스트릿 웨어가 아니라 그냥 공항 유니폼이 된다.


사실 제일 속 편한 답은 안 사는 것이다. 스트릿 브랜드는 아예 손대지 않는 게 제일 깔끔하다.


그래도 갖고 싶다면


그래도 혹시 갖고 싶다면, 최소한 그 브랜드의 기본템은 피하는 게 낫다. 로고 박힌 반팔티처럼 누구나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아이템은 그만큼 가장 흔하게 널려 있다. 나한테는 기아 타이거즈 팬샵에서 산 아이앱의 아노락이 예외였다. 일단 흔하지 않은 데다, 간절기에 걸치기 좋아서 지금도 종종 꺼내 입는다. 희소해서 산 게 아니라, 희소하면서 동시에 쓸모도 있었던 경우다. 이런 식의 콜라보 한정판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는다. 정가에 살 수 있을 때만 사는 것. 리셀가에 웃돈까지 얹을 만한 가치는 없다고 본다. 어차피 옷 한 벌이다. 정가에 사서 잘 입으면 충분하고, 웃돈을 주기 시작하면 옷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에 매달리는 쪽에 가까워진다.

좌: 사운드샵 발란사, 우: FRERES

한정판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방법은 하나 더 있다. 브랜드를 직접 디깅 해보는 것이다. 가령 부산에서 시작한 발란사(balansa.co.kr)는 이미 꽤 많이 알려졌지만, 앞서 얘기한 슈프림·스투시·아이앱만큼 흔하진 않다. 이 정도로 '적당히 알려진' 온도라는 걸 알고 골라 입는 거라면 그것대로 괜찮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 브랜드를 직접 찾아 기본템으로 가볍게 걸치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막 시작하는 브랜드는 보통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부담이 적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 때가 그랬다. 숙소 1층 카페 직원들이 하나같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프린팅이 꽤 근사해서 무슨 옷인가 싶었다. 자세히 보니 목 뒤 쪽에 손톱만 한 브랜드가 박혀있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 절제된 방식이 오히려 스토리가 있어 보여서, 나도 한 장 샀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Fréres라는 현지 브랜드였다. 브랜드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지금도 만족하며 입는다.


이런 옷은 남들이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고 사는 게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게 오히려 정상이고, 내가 그 옷을 왜 골랐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운 좋게 그 브랜드가 뜨면 남들보다 먼저 알아본 셈이 되고, 설령 인기를 못 끌더라도 편하게 입는 티셔츠 하나 산 셈 치면 그만이다.


나이키는 괜찮지만, 범고래 덩크는 아닌 이유


반면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이키를 입고 나간다는 건 그냥 편하게 운동하겠다는 뜻이다. 한강에서 똑같은 로고를 입은 사람을 열 명 마주쳐도 민망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애초에 목적이 희소성이 아니라 '대중적인 기능성과 편안함'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이키라고 전부 안전한 건 아니다. 나이키 범고래 덩크가 대표적인 예외다.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범고래 덩크는 구하기 어려운 신발이었다. 정가 10만 원대 신발이 리셀 시장에서 두세 배 값에 거래됐다. 블랙 앤 화이트 조합이라 아무 옷에나 무난하게 어울리니,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이 범고래 덩크에 웃돈을 얹은 건 편해서가 아니었다. 예쁘지만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신고 나가는 것만으로 '나 이렇게까지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브랜드는 나이키였지만, 소비되는 방식은 앞서 말한 스트릿 브랜드의 마패와 다르지 않았다.


출처: 인터넷 밈


그런데 나이키가 재발매를 거듭하며 물량을 쏟아내자 상황이 뒤집혔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던 신발이 어느새 길에서 몇 걸음마다 마주치는 신발이 됐다. 희소성으로 버티던 신발은 흔해지는 순간 값어치가 사라졌다. 그렇게 유행이 지나가고 나니 오히려 밖에 신고 나가기가 더 애매한 신발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버지 세대의 발에서 범고래 덩크를 종종 본다. 아들이 신발장에 처박아둔 걸 보고 '이 멀쩡한 걸 왜 안 신어' 하며 꺼내 신는 그림이지 싶다. 한때 웃돈까지 붙던 신발이 아버지의 동네 마실용이 된 셈이지만, 신발 입장에서는 오히려 제명을 다하는 셈이다.


범고래 덩크는 문제가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 방식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대중적인 나이키라도 희소성을 사는 순간, 스트릿 브랜드와 같은 운명을 걷는다. 흔해지면 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행을 가려서 따르는 쪽을 택했다. 특히 희소성이 곧 값어치인 스트릿 브랜드는 더 조심하게 된다. 옷장이 아직 기본조차 채워지지 않았다면, 비싼 프리미엄이 붙은 스트릿 브랜드에 돈을 태우는 건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다. 그 돈이라면 차라리 내 체형과 나이에 맞게 핏이 떨어지고, 원단과 만듦새가 탄탄한 기본 아이템을 하나 더 갖추는 쪽이 훨씬 자연스럽고 격 있는 멋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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