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가도 되는 유행과 걸러야 할 유행의 기준

Part 2 - 2

by룰루라임

1020은 그냥 예쁘면 입는다. 우리 어릴 적 엄마가 "그렇게 입으면 감기 걸려!"라고 아무리 말해도 결국 입고 싶은 대로 입었던 것과 같다. 그들에게는 지금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도 더 빠르게 취하고 빠르게 버릴 수 있다.


우리는 사정이 좀 다르다. 한 벌을 사도 오래 입을 수 있는지를 따지게 되고, 그들이 만들어낸 모든 유행을 다 따라갈 이유도 없다. 다행히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따라가도 되는 유행과 그렇지 않은 유행이 비교적 뚜렷하게 갈린다.


따라가지 말아야 하는 유행


2010년대 후반, 명품 로고가 온몸을 휘감던 시절이 있었다. 흔히 '로고 플레이'라 부르는 이 흐름은 구찌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후드티, 멀리서 실루엣만 봐도 발렌시아가인 줄 아는 스니커즈 한 켤레를 다들 갖고 싶게 만들었다. 대중적인 브랜드에 비하면 매우매우 비싸지만, 돈을 벌고 있는 3040 남성이 큰 결심을 한다면 못 살 것도 없다.


나도 이 유행을 완전히 피해 가지 못했다. 청키한 신발이 한창일 때 구찌 라이톤을 한 켤레 샀다. 그나마 로고가 없고 깔끔해 보인다는 게 고르는 기준이었지만, 누가 봐도 구찌인 신발이었다. 실제로 통 넓은 바지에 꽤 잘 어울린다 생각해서 한동안 잘 신고 다녔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켤레를 잘 신으니 욕심이 생겨서 프라다의 검은 스니커즈를 하나 더 샀다. 이번엔 어디에 신을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갖고 싶어서 샀다. 결과는 명확했다. 어떤 바지에 매치해도 어정쩡했고, 결국 몇 번 신지 못한 채 신발장에 들어갔다.


비슷한 값의 신발 두 켤레인데 한쪽만 제 몫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는 신을 자리가 있었고, 두 번째는 없었다. 그 신발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받아줄 나머지 옷이 내 옷장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첫 번째 신발도 결국 같은 처지가 됐다. 통 넓은 바지에 청키한 신발이라는 그 조합 자체가 흔해지고 식어버리니, 잘 어울리던 자리마저 사라진 것이다.


이런 유행을 걸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첫째, 이런 유행은 확 떴다가 확 꺼지는 만큼 지나가는 속도가 빠르다. 둘째, 로고 플레이는 다시 올 순 있지만, 새로운 로고와 새로운 아이템을 달고 온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부츠컷은 핏 자체가 돌아오니 옛날 바지를 다시 꺼내 입을 수 있다. 하지만 로고는 유행이 돌아와도 다른 형태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 결론은 하나다. 오래 입을 수가 없다는 것. 유행이 지나가면 그 옷은 다시 입을 날이 안 오고, 결국 몇 년 못 가 옷장에서 폐기 수순을 밟는다. 태어나서 손에 꼽을 정도의 지출이라면, 이걸 몇 년이나 입을 수 있는지는 알고 사는 게 좋다. 내 경험으로 누가 봐도 명품인 걸 알 수 있는 로고 옷은 대체로 2년, 길어야 5년이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가성비로만 따져보자. 200만 원으로 신발을 산다고 치면, 하나는 명품 브랜드의 빅 로고가 박힌 스니커즈고, 다른 하나는 알든(Alden)의 코도반 구두다. 나는 아직 코도반까지 가보지는 못했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방향은 대충 보인다. 빅 로고는 언젠가 신기 창피해지는 순간이 온다. 반면 로고 하나 없는 코도반 구두는 신을수록 가죽에 깊은 광이 올라, 10년이 지나면 오히려 "이거 어디 거예요?"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같은 돈을 쓴다면 어느 쪽이 남는 장사일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결국 로고로 가격을 증명하려는 순간 스타일에서는 이미 진거다. 심플하게 가는 편이 편하다.


따라가도 되는 유행


그렇다고 모든 유행이 다 이런 식은 아니다. 로고 플레이가 반짝 떴다가 내 옷과 함께 사라지는 쪽이라면, 정반대편에 있는 유행도 있다. 반짝 뜨고 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유행이라기보다 근본에 가까워서, 몇 년이 지나도 계속 따라가도 되는 흐름이다. 이번엔 그 반대편, 아메카지를 보자.


아메카지는 '아메리칸 캐주얼'을 줄인 일본식 조어다. 미국의 워크웨어·밀리터리 스타일을 일본의 감성으로 다시 조합해 즐기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세부 장르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청바지나 면바지에 샴브레이 셔츠를 받쳐 입고, 그 위에 살짝 헤진 야상 하나 걸치는 정도면 충분히 감이 온다. 빡빡한 넥타이 정장을 갖춰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일상복으로 이만한 게 없다.


해외 스트릿 스냅 (출처: Pinterest)


아메카지를 깊게 파면 끝이 없지만, 핵심만 추리면 세 가지다. 생지 데님, 워크재킷, 그리고 M65 같은 밀리터리 아우터. 생지 데님은 처음엔 뻣뻣해도 입을수록 내 몸에 맞게 주름이 잡히고 색이 바랜다. 낡을수록 멋이 붙는 옷이다. 워크재킷과 밀리터리 아우터는 애초에 실용성과 내구성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라, 유행이 아니라 기능으로 살아남았다. 셋 다 '어느 브랜드의 무슨 모델'이 아니라 원단과 실루엣이 핵심인 옷이다. 그래서 싼 옷 여러 벌보다 좋은 것 하나를 오래 입는 쪽이 결국 남았다. 이런 게 따라가도 아깝지 않은 유행이다.


내가 보는 기준은 두 가지다. 유행이 지나가도 통용되는 아이템인가, 그리고 지금 내 옷장에 자연스럽게 매치되는가. 내가 산 신발 두 켤레는 첫 번째 기준에서 나란히 탈락했고, 그중 한 켤레는 두 번째 기준에서마저 처음부터 탈락이었다. 둘 다 맞는 아이템이라면 따라가서 사도 되고, 그렇지 않다면 거르는 식이다.


1020이 지금만 보고 옷을 산다면, 우리는 조금 더 먼 시간을 보고 사면 된다. 이 옷을 3년 뒤에도, 5년 뒤에도 입고 있을지. 그 질문 하나만 던져봐도 거를 유행과 따라갈 유행은 생각보다 쉽게 나뉜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게 아니라, 오래 남을 유행만 골라서 따르는 것. 3040의 옷 입기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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