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서 주체성 이야기를 했다.
주체성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결과를 그려보는 힘, 그리고 실제 이행해보면서 수정해 가며 행동 후 자기 성찰까지 이어지는 내적 힘'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의 학생 주체성은 단기적으로 보면 학업에서의 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몇몇 연구에서 학생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높을수록 학업 성취도 또한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Reeve & Tseng, 2011; Reeve, Cheon, Jang, 2020). 그러나 이때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면 교사가 그에 관심을 갖고 수업을 조정해주는 노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학생의 주체적 행동이 주변 어른의 반응을 변화시켜 더 지지적인 환경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성이 높은 것이 마치 혼자 결정하고 주변 도움 없이 알아서 해내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쉽지만,
사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적절하게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에 더 가깝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주체성을 항상 확신에 차 있거나 혼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이행 과정에서 고치고 배우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그리고 결과를 돌아본 뒤 다음 선택으로 나아가는 등의 반복적인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성은 내 삶에 대한 통제감을, 그리고 심리적 안녕감을 가져다 준다(Smith et al., 2000).
그렇다면 내 아이의 또는 나의 주체성은 어느 정도일까? 진단이 될까?
아래 문항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23)에서 Student Agencty를 '학습자 주도성'으로 번안한 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맞게 의도성, 자기조절, 자기성찰의 3개 요인으로 구분한 뒤 개인 및 공동체 수준에서의 측정도구를 개발한 것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는 중학생용 학습자 주도성 측정도구(KICE)이다.
우리 아이에게 직접 측정해봐도 좋고 본인 스스로 측정해 봐도 좋다. 1에서 5점 사이를 고르면 된다. (1점 전혀 그렇지 않다, 2점 그렇지 않다, 3점 보통, 4점 그렇다, 5점 매우 그렇다)
(이때 "'꿈'이라는 것이 어떻게 중학교 때 만들어지며 추상적인 먼 미래를 향해 아이들이 어떻게 거창한 인생 설계를 하고 차근차근 이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인생이 그렇지 않은데..!" 와 같은 반박은 차치하고 아이들 기준에서 자신이 마음먹은 그 무엇이든, 당장의 중간고사 혹은 운동선수라는 꿈, 이번 방학에 친구와 도전할 영화 만들기 등의 주관적 목표를 기준으로 진단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떻게 자라날까.
“네가 알아서 해”라며 모든 결정을 아이에게 넘겨준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주체성을 제시한 반두라 이론을 기준으로 보면 아이가 의도성, 예견, 자기조절, 성찰까지를 스스로 한 번 해 볼 기회를 끊임없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1. 뭘 하겠다고 하는 아이, 일단 오케이 해주기.
아이가 뭘 해보고 싶다고 할 때 부모는 더 효율적인 길을 알려주고 싶어진다.
물론 우리가 경험이 더 많으니 대부분 이런 조언은 틀리지 않는다. 시간 대비 효율, 성공 가능성, 그리고 남들 대비 위치 등.. 계산기 두드려보면 답이 나오는 걸..
그치만 아이는 스스로 목표를 선택할 기회를 잃는다. 반두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순간 아이의 의도성과 사전숙고가 동시에 차단된다.
아이에게는 자신이 고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경험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선택부터 뭘 하겠다고 하면 일단 오케이! 하는 거다.
2. 예견하는 힘, 질문으로 길러줘 보자.
질문을 통해 아이가 선택한 결과를 생각해보도록 도와줄 수 있다.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뭐야?”
“이걸 선택하면 무엇이 좋고 불편할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이는 자신의 목표를 말하고, 선택 이후의 상황을 예상한다.
3. 직접 해보겠다고 할 때는, 정말이지 놔두자.
아이가 목표를 잡았다고 해도 실행 과정에서 부모가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다. 하다 말까봐, 중간에 포기할까봐 두려운 거다.
그러나 자기반응성은 난관 앞에서 스스로 방법을 조절하며 길러진다. 중간에 힘들어하거나 계획을 바꾸는 것도 과정의 일부다. 굳이 돕고 싶다면 아이가 다음 행동을 고르도록 도울 수는 있겠다. 그게 끝내는 것일지라도.
4. 끝까지 하는 것보다 끝까지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면 다행이다. 그것도 어떻게 그 목표가 달성됐는지 돌아봐야 한다.
목표의 반만 이루었다면? 그것도 어떻게 결과가 그정도에 그쳤는지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만약 결과가 포기라면?
결과가 포기일지라도 왜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었는지, 어디까진 괜찮았는지 고민하게 해야 한다. 아이는 '다음에 뭘 바꾸고 싶은지' 그 마음을 정리할 것이고, 그것은 다음 목표 세우기를 유도한다.
이렇게 2화에 걸쳐 정리한 주체성 이야기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대한(어찌보면 부모의 가장 큰 목표이기에) 열정으로 열심히 고민해 본 내용이라지만,, 삶의 진로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우리 세대에게, 그리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agency AI가 머지않았다고 하는 지금, 필요한 걸 스스로 판단해 최적의 효율로 아웃풋을 내주며 심지어 이래라저래라 우리를 가르칠 그 녀석에 의존하며 살기 보단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더 즐기고 만끽하며 아이들과 뚝딱거리며 살기 위해 주체성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Reeve, J., & Tseng, C. M. (2011). Agency as a fourth aspect of students’ engagement during learning activities. Contemporary Educational Psychology, 36(4), 257–267.
Reeve, J., Cheon, S. H., & Jang, H. (2020). How and why students make academic progress: Reconceptualizing the student engagement construct to increase its explanatory power. Contemporary Educational Psychology, 62, 101899.
Smith, G. C., Kohn, S. J., Savage-Stevens, S. E., Finch, J. J., Ingate, R., & Lim, Y.-O. (2000). The effects of interpersonal and personal agency on perceived control and psychological well-being in adulthood. The Gerontologist, 40(4), 458–468.
이인태, 우연경, 유은정. (2023). 중학생용 학습자 주도성 측정 도구 개발 연구. 교육과정평가연구, 26(2), 1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