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개론을 배우면 감각부터 배웠던 것 같다.
감각과 지각.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1차원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에서 뱀을 보면 도망가고 탄 냄새가 나면 불이 났나 찾아본다. '불이야' 소리가 들리면 도망친다.
음식을 입에 댔을 때 쓰면 뱉는다. 라면냄비를 잡았다 뜨거우면 바로 손을 뗀다.
생존과 직결된 감각들은 엄청 빠른 뇌 처리를 통해 행동을 유도한다.
생존을 위한 감각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고민을 하는 고차원(?)적 삶을 살아가지만
그 이전에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몸이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온 몸으로 감각하며 차곡차곡 데이터를 쌓는다.
눈과 코, 귀, 피부가 자극을 받아들였다면, 뇌는 지각을 통해 자극을 맥락과 결합시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든다.
1. 향기와 노스텔지어
모두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 나는 특유의 비 냄새가 과거 어느 시점의 날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경험말이다.
난 아침 특유의 비 비린내에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기 싫던 아침이 떠오른다.
약간의 긴장감과 불편한 몸의 감각(배가 살살 아프다거나 몸이 찌뿌둥한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치만 이게 부정적 감정이라기보다 어떤 면에서 예민했던 어린 나에 대한 연민이나 포용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어딘가 어색한 불편한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디며 학교에 갔던 어린 나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의 아침이 중요한 일이 있어 긴장되는 날이라면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화이팅하게 된다. 그래, 묵묵히 받아들이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번 가보자!
더 단순하게는,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실 때 맡는 커피 향에서는 거의 주마등 수준으로 다양한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커피 향이 주는 행복감 때문인지 연애했을 때의 즐거운 기억, 친구들과의 수다 등이 떠오른다. 그 기억들은 커피 아로마의 달콤함에 심지어 더 미화(?)되기까지 한다.
연구에 따르면(Reid et al., 2015) 개인에게 익숙하면서 자전적 경험과 연결된 향은 노스텔지어를 강하게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때 향기로 유발된 노스텔지어는 행복하고 황홀한 느낌처럼 긍정적 정서와 관련이 높다.
물론 노스텔지어가 반드시 행복한 기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향기로 유발된 향수는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를 세 배 더 많이 동반했다. 향수는 씁쓸하지만 대체로 달콤한 쪽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렇게 유발된 노스텔지어가 '아, 행복했던 그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연속성, 슬롯적 유대감, 자존감, 삶의 의미, 낙관성과 같은 긍정적 사고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즉 향기는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와 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람이라는 감각을 되살린다. 동시에 그 기억 속에 함께 있던 사람들을 불러와 사랑받는 존재라는 느낌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 자신과 삶을 가치있게 여기는 감각을 도모한다.
향기를 대표적 예시로 들었지만 소리와 맛, 족감까지 통일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둘째(지금은 초3) 목소리가 쉬었다. 그래서 쉰 목소리를 내는데 몇몇 발성과 발언이 확-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켰다. 아이가 한창 3~6세정도까지 목소리가 쉰 상태였는데(의사선생님 왈 목청이 약한데 소리를 너무 많이 질러서 그렇다고..) 그 시절의 아이 목소리가 전해진 것이었다. 행복한 감정이 밀려왔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아이 모습, 그 쉰 목소리로 진지하게 떠드는 게 웃겨 바라보며 즐거웠던 내 감정이 떠올랐다. 이건 첫째 아이 기억으로도 이어져, 첫째가 어릴 때 갖고 있던 특유의 코맹맹이의 어눌한 말투를 커서 발견했을 때 재미있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연결시켰다. 그렇게 몇 초 웃고 나니 아-이게 인생이지 뭐. 이거면 됐다. 이렇게 귀결되었다.
상기 소개한 연구는 글을 쓰며 찾아본 연구였지만 내 개인적인 사례로써 지극히 공감되는 내용이라 놀라웠다.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보자. 아주 가까운 과거에 여러분 모두 이런 경험이 하나씩을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작은 일상에서 우리가 감각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2. 감각과 뇌의 착각
심리학을 배우면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인간은 비이성적, 비합리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모든 인간 현상을 설명해준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준다.
AI와 애초에 경쟁할 생각은 말고 나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걸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거창하게 단언하다니, 아래 내용은 감각과 관련된 인간의 비이성적 판단을 보여주는데 일단 보자.
벌써 20년도 넘은 Li 등(2007)의 연구에서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이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수준에서 좋은 냄새, 중립적 냄새, 불쾌한 냄새를 맡게 하고 그동안 얼굴 사진 호감도를 평가하게 한 것이다. 냄새를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분 좋은 향은 얼굴 호감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흥미롭게도 냄새를 잘 알아차릴수록 그 효과는 줄었다. 출처가 무엇인지 알면 판단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냄새에서 생긴 느낌이 상대방에 대한 느낌인 양 섞여 들어간다.
Seubert 등(2014)의 유사한 연구도 있다. 좋은 향기와 함께 제시된 얼굴이 더 매력적으로 평가되었다. 그치만 사진 속 사람이 몇 살인지를 묻기도 했는데, 몇 살인지 가늠하는 인지적 판단에는 향의 효과가 줄어들었다. 연구는 향기가 인간의 정서적 반응으로 직결되는 점을 강조했다.
어제 저녁 당신의 소개팅 상대가 유독 괜찮아 보였다면? 분위기 좋은 카페의 조명과 음악, 테이블 위 커피 향이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호감을 끌어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마케터들이 조명과 향, 음악을 열심히 연구하며 소비자를 홀리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실제 매장과 브랜드에 대한 좋은 기억, 구매까지 이어지니까.
그래서?
우리가 나름 이성적 판단을 했다고 착각하지만 감각에 휘둘려 나도 모르게 낚이는 삶을 살고 있는게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 걸까.
그저 '알면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비이성적 인간이라는 걸 알면 수많은 내 결정에 대한 후회, 앞으로의 결정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부담감을 좀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으로 이를 이용할 수도 있고 말이다. AI로 수입이 줄어드는 지금.. 신랑과 가계 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만...) 일단 쿠키를 구워놓고 대화를 시작해보는 거다. 달콤한 향이 긴잠감을 녹여 주고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 줄 수 있다. 그럴 맘의 여유조차 없다면, 최애 향수라도 촥촥 뿌리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겠다..!
Li, W., Moallem, I., Paller, K. A., & Gottfried, J. A. (2007). Subliminal smells can guide social preferences. Psychological science, 18(12), 1044-1049.
Reid, C. A., Green, J. D., Wildschut, T., & Sedikides, C. (2015). Scent-evoked nostalgia. Memory, 23(2), 157-166.
Seubert, J., Gregory, K. M., Chamberland, J., Dessirier, J. M., & Lundstroem, J. N. (2014). Odor valence linearly modulates attractiveness, but not age assessment, of invariant facial features in a memory-based rating task. PloS one, 9(5), e98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