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불안이 줄어드는 순간을 수집하다
결혼에 대한 걱정을 자주 늘어놓는 지인이 있다. 그와 나의 불안은 생김새가 닮아있어 우리는 종종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그와의 대화는 위로가 될 때가 많았다. 얼마 전에도 평소처럼 잡담을 하다 별생각 없이 주말 일정을 묻게 되었다. 질문을 들은 그는 돌연 시무룩해지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무 약속도 없어요. 나이 먹으니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약속이 점점 없어져 외롭네요.”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사는 방식이 바뀌어서 그런가. 싱글인 친구를 새로 사귀는 건 어때요?”
“하지만 저희가 가야 할 방향이 바로 기존 친구들의 삶의 방식인걸요. 새 친구를 만들게 아니라 거기에 도달해야죠.”
그의 말을 듣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도달이라.
“결혼 후 가정을 이루는 것만이 정답이라면 너무 우울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은 인생은 틀린 것 같잖아요. 다양한 삶이 있는 거죠.”
나의 말을 듣고 그는 그렇기는 하죠,라고 답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의 종착지가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일까.
결혼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도, 내심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금껏 살아오며 인생에는 어느 정도 정해진 답이 있다고 여겼다. 나의 경우 입시와 취업이 그랬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바카라장을 직접 그린 만화로 가득 채울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취업이 잘 된다는 공대로 진학하는 것이 정답처럼 보였기에 미대 입시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친척 어른께서 “너는 미술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의외네.”라고 하시기에 이상한 생각을 하셨네, 하고 말았다.
대학에 와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고 믿었다. 뜬금없이 연기를 하겠다거나 모델로 데뷔하겠다며 학교를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졸업해서 좋은 온라인 게임을 얻으면 남은 인생 탄탄대로인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갈까 싶었다. 학교 밖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다 돌연 이제 와서 삶에는 다양성이 있다고 하니, 스스로 말을 뱉으면서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껏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결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억지로 만들어낸 정신 승리 같았다. 그래서 지인과의 대화가 그토록 머릿속을 헤집으며 불쾌함을 불러일으켰나.
그런데 결혼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 할수록, 결혼을 인생의 완성으로 여기는 것이 어리석다고 느껴졌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해야 하는데,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뒷전이 된다. 게다가 그 밖의 삶은 자동으로 열등한 것으로 취급해 버린다. 나 역시 오랫동안 스스로가 패배자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의 좁은 슬롯 밖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삶의 다양한 모습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주제넘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지인에게도 이 생각을 전해주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미혼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초조함에 사로잡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나쁜 생각을 하고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자바카라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다양한 삶의 한 형태임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