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반가운 톡이 울린다. 또 쓸데없는 메시지겠거니 넘겨버렸다. 이미 두 손은 자연스레 폰으로 가 있다. 숨길 수 없는 반가움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 관련이 없는 아이들에게 '샘 아들 온대' 한마디 던지고는 멋쩍어 또 웃어버렸다.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한 아이들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참 쓰잘데기 없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낼 저녁 내려오면 주말에 올라가겠지. 일이 있어 내려오나 보다. 결혼식이 있나. 온갖 생각에 기분은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짧은 만남이 서운함으로 공존한다. 톡으로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수업 중에 실례가 되는 일이고 잠시 후면 끝날 수업이라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는데 문디 자슥,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업무도 끝났을 텐데 전화를 받지 않는 심사는 뭘까. 다시 걸려올까 싶어 얼른 끊고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면 그렇지 망할 놈의 자슥, 손가락 한 번 굴리면 누가 잡아먹나. 섭섭한 마음이 똬리를 틀어 빙글빙글 돈다.
내려온다는 날 저녁이 되어서야 먼저 문자를 넣었다. 밤 12시쯤 도착한다는 걸 알면서도 행여 다 와 가는지 궁금했기도 하고 도착하면 무얼 해 주나 미리 물어보고도 싶었다. 간단한 것 먹고 싶다는데 뭐가 간단한 것인지 모르겠는 엄마 마음이다. 일이 있어야 내려오고 친구가 있어야 내려오는 부모집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리하여 얼굴 한 번 온종일 마주 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불고기를 해 줄까, 꽃게탕을 해 줄까 기다리고 있는데 라면 있느냐는 아름다운 문자가 날아온다. 이 다 늦은 밤에 라면이 뭐냐, 하긴 불고기나 라면이나 그 자슥 입장에선 라면이 더 땡기는 음식이니 집에 들어올 때 하나 사 오라 오히려 부탁하고 말았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녀석의 손에 컵라면이 들려 있고 우람해진 어깨에 보부상 가방이 걸려 있다. 토요일 진주에서 대학 선배 결혼식이 있어 내려왔다 툭 던지고는 제 형과 영혼 없는 포옹을 나눈다. 포옹 순서도 뒷순위로 밀려났다. 그러려니 하고 산다.
이번엔 이틀을 온종일 집에서 보낸다. 하루는 점심을 같이 먹었고 저녁도 같이 먹는 행운을 누렸다. 오래간만의 일이다, 이런저런 할 얘기는 짧아도 얼굴 보는 시간은 길어져서 고마웠던 날이다. 갈수록 문자 횟수도 줄어들고 대화도 줄어들고 만남도 줄어든다. 앞으로 더 나이 들고 더 바빠지면 얼굴 더 보기 힘들 텐데.
누군가 그랬다. 지금부터 일 년에 서너 번 부모 얼굴을 보더라도 앞으로 많으면 3~40번이라고. 몇 번 되지 않는 숫자에 마음 약해지고 제한된 숫자에 마음 아프고 더 늘어나지 않는 숫자에 눈물이 고인다. 저노무 자슥은 이 마음을 헤아릴까.
엄마도 더 노력해 볼게. 어떤 주제로 같은 이야기를 나눌지 네 마음 들여다볼게. 너희들도 부모 마음에 조금만 더 다가와 주렴.
ㅡ사랑하는아들에게 전하는말ㆍ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