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의 우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보다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 잠이 일찍 깬다는 말, 부모님 병원에 다녀왔다는 말.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다 이야기는 조금씩 각자의 형편으로 옮겨갔다.
누군가는 오래 하던 일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대출을 거의 갚았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려고 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너는 요즘 어때?”
평범한 안부였다. 그런데 나는 잠깐 대답을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이것저것 맡은 일이 많다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말 뒤에 남겨둔 이야기가 있었다.
바쁜 만큼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아직도 돈 걱정을 하고 있다고.
굳이 꺼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의 말이 하나씩 떠올랐다.
대출을 거의 갚았다는 말.
일을 줄인다는 말.
이제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말.
그 말들을 듣는 동안에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혼자 있으니 질문으로 바뀌었다.
나는 언제쯤. 나는 왜 아직. 나는 그동안 뭘 했지.
‘아직’이라는 말이 자꾸 붙었다.
아직 자리 잡지 못했고,
아직 여유가 없고,
아직 걱정이 많았다.
그 말 하나로 내가 살아온 시간이 미완성처럼 느껴졌다.
같은 나이인데.
이 짧은 말이 이상하게도 비교를 정당하게 만들어주었다. 비슷한 세월을 살았으니 비슷한 것을 이루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욕심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뒤처짐’은 누구의 기준일까.
스무 살에는 무엇을 시작해야 하고,
서른 살에는 자리를 잡아야 하고,
마흔 살에는 안정되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그 시간표를 마음속에 넣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 걱정이 줄어들 줄 알았다. 경험이 쌓이면 선택이 쉬워지고, 열심히 일한 만큼 생활도 넉넉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를 해결하면 다른 일이 생겼다. 내 일이 조금 나아지면 가족에게 손이 필요한 일이 생겼고, 한숨 돌릴 만하면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있었다. 오래 살수록 마음을 써야 할 사람도 늘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오고도 나는 자꾸 결과만 확인했다.
얼마나 모았는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이제 얼마나 편해졌는지.
그 사이에 무엇을 감당했는지는 셈에 넣지 않았다.
친구들과 같은 나이를 살았지만 같은 날들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일찍 기회를 만났고, 어떤 사람은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누군가는 오래 다른 사람을 돌봤다.
그렇다고 내 사정이 더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이 하나만 같다는 이유로 서로의 삶을 나란히 놓기에는 빠진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았다. 현관에 벗어둔 신발을 정리하다 문득 낮에 했던 내 대답이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바쁘지.”
친구들에게는 그 말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뒤에 스스로 이런 말을 붙이고 있었다.
‘아직도 이러고 있어.’
바쁘게 살아온 나를 소개해놓고, 혼자 그 삶을 깎아내린 셈이었다.
늘 잘해온 것은 아니다. 미룬 일도 있고, 후회하는 선택도 있다. 좀 더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만으로 그동안의 나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정신없던 날에도 지킨 약속이 있었다. 힘들어도 나간 출근길이 있었고, 내 사정을 잠시 접어두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 저녁도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남지는 않았지만, 그런 날들 역시 내 나이를 채웠다.
씻고 나와 다이어리를 펼쳤다. 이번 주에도 해야 할 일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도 있었다.
아직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실까지 초라하게 여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부족한 것은 현실이지만, 내 삶 전체가 부족한 것은 아닐 테니까.
휴대폰에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반가웠어. 다음에는 더 오래 보자.”
나는 좋다고 답했다.
친구는 오늘 나를 반가워했다. 내가 대출을 얼마나 갚았는지, 앞으로 일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나에게 그것만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