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알을 낳아도 안 놀라운 세상이 되었다

새벽 네 시, 지구가 둥글다는 게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by쉼표JEONGSEON


장맛비가 내리는 새벽 네 시. 세상이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이 시간에, 빗소리만이 나지막이 창문을 두드린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 시간. 세상의 소음이 잠시 숨을 고르는 이 짧은 틈에서, 나는 비로소 내 생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새벽은 조금 이상하다.


문득, 아주 오래된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적 아무 의심 없이 불렀던, 그 순한 노래. 지구가 둥그니 자꾸 걸어 나가면 언젠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던, 그런 다정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였다. 그 노래가 왜 하필 이 기막힌 새벽에 다시 찾아왔을까.



개가 알을 낳아도 안 놀라운 세상

우리 엄마의 걸쭉한 한마디가 있다. 누군가 앞뒤 안 맞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면 이렇게 받아치시곤 하셨다. "개가 알 낳는 소리 하네."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웃었는데, 요즘 세상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제는 정말로 개가 알을 낳는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어느새, 개가 알을 낳아도 놀라지 않는 이상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거짓이 진실의 자리에 앉고, 진실은 오히려 거짓처럼 취급받는다. 어제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오늘은 틀린 것이 되고, 도무지 믿을 수 없던 일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 있다.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지는 것들이 있다. 화면 속에서는 참담한 현실이 흘러가는데, 정작 그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다. 이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쪽에서는 저렇게 말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라, 그저 가장 큰 목소리를 따라 흘러갈 뿐이다.


세상은 지금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 걸까.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아주 소중한 무언가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지축이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지구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기준점인지도 모른다.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거짓의 판도라 상자는 이미 열렸다.


한번 열린 상자 속에서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뒤덮었다. 이제는 무엇이 원래의 진실 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진실은 오히려 더 희귀해졌다. 손안에 온 세상이 들어와 있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 하나 확신하지 못한 채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진실은 정말 사라진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이 희망이었듯, 온갖 거짓이 다 쏟아져 나온 세상에도 끝내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주 조용하고, 아주 작아서, 소란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잠든 새벽, 빗소리만 남은 이 시간에는 그 작은 것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


진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소란에 묻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게 묻는다

이 흔들리는 세대에 또 하나의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AI인공지능.


나 역시 매일 이 새로운 존재와 함께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눈다. 놀랍도록 똑똑하고, 지치지 않으며,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내는 이 도구 앞에서, 나는 때때로 이상한 질문에 사로잡힌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기계가 더 빠르게 쓰고, 더 정확하게 계산하고, 더 많이 기억하는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값어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가 지금까지 자랑스러워하던 능력들이 하나둘 기계에게 넘어갈 때, 마지막까지 남는 인간의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오래 생각하다가, 이런 답에 이르렀다.


인간의 존엄은 무엇을 잘하느냐에 있지 않다. 그것은 무언가를 느끼고, 아파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마음에 있다. 새벽 빗소리에 마음이 젖는 일. 오래된 노래 하나에 코끝이 시큰해지는 일.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눈물짓는 일. 이것은 아무리 똑똑한 기계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의 것이다.


거짓이 넘치는 세상일수록, 진짜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이 더욱 귀해진다. 어쩌면 AI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장맛비 내리는 새벽, 어두운 창가 바카라상 위에서 둥근 지구본이 따뜻하게 빛나고 한 여성이 창밖을 바라보는 사색적인 배너 이미지.

ChatGPT Image 비 오는 아침의 고요한 서재-2026년 7월 9일 오전 05_51_47.png세상이 아무리 납작하게 굴러도, 지구는 조용히 둥글다.

짙은 새벽 어둠 속 창가 바카라상에 지구본과 스탠드 조명, 펼쳐진 노트와 커피잔이 놓여 있다. 왼쪽에는 제목을 얹을 수 있는 깊은 여백이 넓게 비어 있고, 오른쪽에는 비 내리는 원형 창과 사색에 잠긴 인물이 배치되어 글의 중심 은유인 ‘둥긂’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지구는 네모가 아니니까

다행이다.


다시 그 노래가 생각났다.


어릴 때는 그저 즐거운 노래였는데, 이 새벽에 다시 떠 올리니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문득, 참 엉뚱한 생각 하나가 스친다.


지구가 만약 네모였다면 어땠을까.


그러고 보면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세상은 평평하고, 그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어서, 너무 멀리 나아가면 아래로 떨어져 버린다고. 그때 사람들에게 세상은 끝이 있는 곳, 벽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자기가 틀렸다는 걸 알지 못했다. 오히려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믿었으니, 그 믿음이 곧 진실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믿든, 지구는 처음부터 둥글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던 긴 세월에도, 지구는 조용히 자기 모양대로 돌고 있었다. 진실은 그런 것이다. 다수결로 정해지지 않고, 목소리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온 세상이 네모라고 우겨도, 둥근 것은 끝내 둥근 것이다.


네모에는 모서리가 있다. 네 개의 벽이 있고, 안과 밖이 분명하게 갈린다. 네모난 세상에서는 이쪽과 저쪽이 딱 나뉜다. 내 편이 있으면 반드시 네 편이 있고, 각진 모서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가두고 밀어낸다. 어쩌면 거짓이 판치는 지금 이 세상이야말로, 자꾸만 네모가 되려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벽을 세우고, 편을 가르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려는.


하지만 다행히도, 지구는 네모가 아니다.


둥근 것에는 가둘 모서리가 없다. 아무리 멀리 걸어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고, 아무리 등을 돌려도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마주 보게 되어 있다. 진실도 꼭 그렇다. 잠시 멀어질 수는 있어도, 둥근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끝내 우리 앞에 다시 돌아와 선다.


그 순한 노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서로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 아무리 갈라지고 미워하고 벽을 세워도, 둥근 지구 위에서는 결국 다시 마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가두기보다는 돌아가는 편이, 미워하기보다는 다정한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어린아이의 맑은 목소리로, 그 노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린 시절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부르던 노래 안에, 그리고 지구가 네모가 아니라 둥글다는 그 단순한 사실 안에, 이미 다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벽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

이제 빗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곧 세상이 눈을 뜰 것이다.


날이 밝으면 다시 소란이 시작될 것이다. 거짓이 큰 소리로 말하고, 진실은 또 어딘가에 묻힐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흔들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새벽에 얻은 조용한 확신을 품고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지축이 흔들리는 세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는 확신. 개가 알을 낳는 것 같은 기막힌 세상에도, 끝내 제자리를 지키는 진실이 있다는 확신. 온 세상이 평평하다 우기던 구 시대에도 지구는 둥글 었듯, 세상이 아무리 거짓을 진실이라 불러도 진실은 끝내 제 모양을 지킨다는 확신. 그리고 아무리 똑똑한 기계가 와도, 느끼고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만은 대신할 수 없다는 확신.


지구는 네모가 아니라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진실을 다시 만나고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나는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는다.



쉼표의 엉뚱한 새벽의 생각들을, 조용히 접으며 함께 해요.


이 새벽의 질문 끝에서, 조금 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셨다면.

[11] 나는 분명 쉬었는데 피곤함만 업데이트되었다


이 위로가 시작된, 어느 장맛비 내리던 새벽 쉼표의 또 다른 엉뚱한 생각.

[12] 인생은 긴데 집중력은 전자레인지 3분보다 짧다



— 쉼표 JEONGSEON


#나만의엉뚱한생각 #시즌2 #개가알을낳아도 #거짓과진실 #지구는둥글다 #AI시대인간의가치 #인간의존엄 #장맛비에세이 #새벽에쓰는글 #간판없는카페# 쉼표 JEONG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