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어도 나는 나였다
나는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채워야 비로소 평온해질 거라고. 통장의 숫자가, 인정의 크기가, 곁에 남은 사람의 수가 넉넉해지면 그때야 마음도 넉넉해질 거라고.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다. 그 순서는 틀렸다.
베트남에서 지내던 어느 계절, 나는 아주 작은 방에 살았다. 가진 것이라곤 캐리어 하나, 낡은 선풍기 하나, 그리고 매일 써 내려가던 노트 한 권이 전부였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고, 지갑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건 그 시기의 나였다.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감각보다, 오히려 어떤 홀가분함이 먼저 왔다. 잃을 게 없으니 지킬 것도 없었고, 지킬 게 없으니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무언가로 '가득 차서' 평화로워지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내려놓아서' 평화로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자존감을 조건문으로 배운다. "이걸 이루면 자신 있게 살 수 있어." "이 사람이 곁에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야." "이 정도는 있어야 남들 앞에서 떳떳하지."
그런데 이 조건문들의 문제는, 조건이 채워져도 다음 조건이 또 생긴다는 것이다. 산 정상인 줄 알고 올라가면 그 뒤에 더 높은 봉우리가 서 있다. 결핍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 채우는 방식으로는 영원히 유예될 뿐이다.
내가 아는 진짜 존엄은 이것과 정반대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곳간이 비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해도, 곁에 아무도 없어도 — 그럼에도 나라는 존재는 훼손되지 않는다는 감각. 이것은 무언가를 얻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잃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야 이걸 더 선명히 배웠다. 조직 안에 있을 때는 직함이 곧 나였다. 직함이 사라지자 처음엔 텅 빈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직함이 없어진 자리에 남은 게 바로 '나'였다는 것을.
좋은 상사는 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그 순간처럼, 좋은 삶도 뭔가를 소유한 상태가 아니라 무엇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 더 가까웠다.
많은 사람이 감사를 결과로 이해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가 '나온다'고. 하지만 내가 겪어본 감사는 그 반대였다. 태도로서의 감사는 조건보다 먼저 있다. 상황이 바뀌어서 감사해지는 게 아니라, 감사하기로 정한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도 견딜 만한 것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이건 낙관도 아니고 정신승리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냉정한 선택에 가깝다. "나는 이 결핍에 나의 존엄을 담보 잡히지 않겠다"는 선언.
요즘 나는 가끔 이런 목록을 적어본다.
없어도 나는 나다 —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
통장 잔고, 타인의 인정, 완벽한 하루, 실수 없는 나.
이 목록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마음은 더 가벼워진다. 무언가를 손에 쥐어서가 아니라, 손에 쥐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늘어나서.
풍요가 찾아오면 그것대로 감사하면 된다. 하지만 풍요가 오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있음에 기대는 존엄이 아니라, 없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존엄. 그것이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가장 느리지만 가장 단단한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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