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버틴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상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주말 내내 침대 위를 뒹굴어도 피로는 가시지 않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입에 넣어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기졌다. 바깥에서 사람들과 애써 웃고 떠든 날이면, 현관문을 닫자마자 젖은 솜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그저 체력이 떨어졌거나, 내가 몹시 게을러진 탓이라 자바카라했다. 모니터 앞에서도 초점 잃은 눈으로 시간만 흘려보냈고, 작은 메신저 알림음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숨만 쉬고 있는 나를 향해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정신 차려." "다들 이렇게 버티며 살아." "너 혼자만 유난히 힘든 거 아니야."
그런데 이상했다. 몸은 분명 가만히 쉬고 있는데, 머릿속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진 줄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본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무례한 말에도 관대하게 웃어넘기고, 억울한 일에도 티 내지 않으려 애쓰고, 관계 속에서 늘 이해심 많은 '어른'이 되려 고군분투했던 시간들. 나는 살아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이를 악물고 '견디는 자세'로 서 있었던 것이다.
멈추면 그대로 도태될까 봐 두려워 쉼 없이 달려온 대가는 참혹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 마음 안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방전된 마음이 보내는 가장 무서운 경고는 '무감각'이었다. 사람은 완전히 지쳐버리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기쁜 일 앞에서도 덤덤했고, 슬픈 일 앞에서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수명을 다해 깜빡거리면서도 끝내 전원을 끄지 못한 낡은 형광등. 그것이 딱 내 모습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나태해진 게 아니었다. 그냥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외롭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이상하게도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만 박수를 보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사람에게,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훈장처럼 숨기고 웃는 사람에게 그것이 어른다운 거라며 치켜세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소거한 채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계속 참기만 하면 굳은살이 배기는 게 아니라, 결국 마음이 먼저 바스러지고 만다.
그래서 이제는 궤도를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억지로 괜찮은 척 덮어두지 않기로. 아프면 아프다고, 버거우면 버겁다고 나 자신에게 먼저 고백하기로. 남들보다 조금 늦춰 걷더라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로.
요즘 나는 나만의 작은 회복 루틴을 실천한다. 퇴근길에 평소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무작정 걷는 것. 아무런 정보가 없는 거리의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며, 심장 박동이 평온을 되찾을 때까지 천천히 호흡하는 시간. 그저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나는 비로소 버티는 삶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기분을 느낀다.
예전의 나는 멈춰 서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람은 멈춰야 비로소 다시 호흡할 수 있다. 그리고 깊은숨을 들이마셔야, 다시 내 삶의 운전대를 쥘 수 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다그치며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오늘 밤엔 부디 스스로에게 이 말을 건네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약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애쓰고 있었던 거야."
숨을 고르는 것. 그다음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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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배터리 가득한 인간, 나는 전자레인지 3분 인간》에서는
서로 다른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지친 마음은 때때로 누군가의 다정한 안부 하나로도 조금씩 숨을 되찾는다.
그런 조용한 위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 by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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