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는 자꾸 앞사람의 등을 보았다. 시험장에서는 나보다 먼저 답안지를 넘기는 사람의 종이 소리가 신경 쓰였다. 일을 시작하고서는 앞서가는 사람이 보였고, 사업을 하면서는 한발 먼저 움직이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산에서도 비슷했다. 저만치 앞서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보폭이 커졌다. 굳이 경쟁할 이유가 없는데도 거리가 벌어지면 조금 불편했다.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더 빨리 알고 싶었고, 조금 더 잘하고 싶었으며, 가능하면 남보다 먼저 도착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꽤 오래 살았다. 앞선다는 것의 달콤함, 앞선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시험에 합격하면 내가 한 단계 올라선 것 같았다. 새로운 자격을 얻으면 내 능력이 한 뼘 넓어진 듯했고, 일이 잘 풀리면 내가 선택한 방향이 옳았다는 확신도 생겼다.
성과는 사람에게 묘한 단맛을 준다. 한번 맛보면 또 원하게 된다. 하나를 이루면 다음 목표가 보이고, 그곳에 도착하면 더 먼 곳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성공에는 마침표가 잘 찍히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꼭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더 공부했다. 부족함을 느꼈기에 새로운 분야를 배웠고, 실패했을 때는 다시 일어설 이유를 찾았다.
경쟁은 때로 나를 깨우는 새벽종이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가는 것과 잘 사는 것을 같은 뜻으로 생각했다는 데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비교 속에서 살았다. 다른 사람은 어디까지 갔는가. 나는 어느 정도인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 누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는가. 비교는 처음에는 자극이 된다.
그러나 오래 붙들고 있으면 마음에 작은 자를 하나 들여놓게 된다. 그 자로 다른 사람을 재고, 결국 나 자신까지 잰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분명 어제보다 나아졌는데도 기쁘지 않다. 나보다 더 앞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이 적지 않은데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에는 결승선이 없다. 내가 한 사람을 앞서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래서 비교로 얻은 만족은 늘 유효기간이 짧았다.
내가 여태껏 보고 있던 것은 길이 아니라 순서였다
산을 걷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앞사람만 바라보고 걸으면 길가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등산화 앞에 놓인 돌과 앞사람의 배낭만 바라보며 걷다 보면 길섶에 핀 작은 꽃도,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볕도 지나쳐버린다.
인생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순서를 확인하며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번째인가. 앞인가, 뒤인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인정받았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그러느라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를 자주 놓쳤다.
‘나는 지금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걷고 있는가.’
노자는 『도덕경』 제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不尙賢 使民不爭(불상현 사민부쟁)”, 뛰어난 사람을 지나치게 떠받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서로 다투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젊은 날 이 구절을 읽었다면 조금 낯설었을 것이다. 뛰어난 사람을 인정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나는 경쟁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의의 경쟁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목표는 삶에 긴장을 준다. 다만 살아보니 노자가 경계했던 것은 능력 자체보다 능력을 서열로 바꾸어 사람의 값을 매기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앞선 사람은 더 귀하고 뒤처진 사람은 덜 귀하다고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경쟁은 성장의 자극에서 존재의 비교로 변한다. 그때부터 사람은 자신의 길보다 다른 사람의 위치를 더 자주 바라본다. 나 역시 그랬다.
늦게 피는 꽃에는 늦었다는 말이 없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 젊어서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이 있고, 한참을 돌아서야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일찍 꽃을 피우고, 어떤 사람은 늦은 계절에 꽃을 피운다.
꽃에게는 ‘지각’이라는 말이 없다. 제때 피어난 것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삶에는 너무 쉽게 시간표를 붙인다.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저 나이라면 이것쯤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표에서 조금 벗어나면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남보다 늦게 가는 것과 내 삶에 늦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자기 길을 놓치는 것이 더 아쉬운 일일 수 있다. 요즘 산길에서는 젊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가도 그냥 보낸다.
“먼저 가세요.”
그 한마디가 예전보다 편해졌다. 앞사람의 뒷모습은 금세 작아진다. 나는 다시 내 걸음으로 돌아온다. 숨이 차면 잠시 멈추고 물을 마신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보고, 가끔은 뒤를 돌아 내가 올라온 길도 바라본다. 늦어진 대신 보이는 것이 많아졌다. 그것이 나이 들어 얻은 작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앞서가는 사람을 바라보느라 내 길을 놓치지 않는 것. 살아보니 그것도 하나의 공부였다.
이제는 먼저 도착하는 사람보다 자기 보폭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