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기존 업무방식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리더는 몇 장 넘겨보더니 말한다.
“그 방법은 예전에도 해봤어요. 잘 안 됩니다.”
직원은 설명하려 한다.
“그때와 지금은 기술과 환경이 조금 달라져서…….”
리더가 말을 잇는다.
“내가 이 일을 오래 해봐서 압니다.”
대화는 거기에서 끝난다. 리더의 말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랜 경험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들어 있다. 조직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도 경험의 힘이다. 그런데 몇 달 뒤 경쟁회사가 비슷한 방법을 도입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제야 리더는 생각한다.
‘나는 경험으로 판단한 것일까, 경험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일까.’
경험은 리더의 가장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경험이 모든 새로운 생각을 재단하는 자가 된다면, 자산은 조금씩 벽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도덕경』 제76장은 인간의 몸에서 시작한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죽으면 굳고 뻣뻣해진다는 뜻이다.
노자는 이어 풀과 나무를 바라본다.
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여리지만 죽으면 마르고 굳어진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에 가깝고,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삶의 무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노자는 여기서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던 강함과 약함의 자리를 뒤집는다. 굳어 있음이 반드시 강함은 아니며, 부드러움이 반드시 약함도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기 때문에 움직이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변화한다.
조직에도 살아 있는 조직과 굳어가는 조직이 있다. 살아 있는 조직에서는 이런 말이 들린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번에는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예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반대로 굳어가는 조직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원래 그렇게 해왔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안 됩니다.”
“그건 내가 해봐서 압니다.”
“윗분이 싫어할 겁니다.”
나는 조직의 노화를 사람의 나이보다 이런 문장들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회사라고 늙은 조직은 아니다. 젊은 직원이 많다고 젊은 조직도 아니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관절이 남아 있는가. 그것이 조직의 나이를 결정한다. 경험은 길이지만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하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생긴다. 어떤 고객이 위험한지, 어떤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 빠르게 알아본다.
이것이 경험의 힘이다. 그러나 경험에는 한 가지 약점도 있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를 과거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 많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경험의 끝에 작은 물음표 하나를 남기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어렵다. 그런데 지금도 정말 그런가?”
이 한 문장이 굳어가는 생각에 작은 관절을 만들어준다.
리더가 부드러워지는 가장 어려운 순간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았을 때다. 직원 앞에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권위가 떨어질 것 같고 신뢰를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명을 붙인다.
“그때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습니다.”
물론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더 짧은 말이 조직을 강하게 만든다.
“내 판단이 틀렸습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리더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조직은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잘못된 판단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틀리지 않는 리더보다 중요한 것은 틀렸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리더다. 굽힌다는 것은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모든 요구에 맞춰주는 태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리더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안전, 품질, 신뢰, 윤리, 사람에 대한 존중. 이런 원칙까지 상황에 따라 바뀐다면 유연함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가 된다. 부드러움은 목적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길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산을 오를 때도 정상으로 향한다고 해서 언제나 직선으로 걷지는 않는다. 가파른 비탈에서는 지그재그로 오르고, 위험한 바위가 있으면 돌아간다. 돌아간다고 목적지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가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다. 리더도 그래야 한다. 원칙은 단단하게, 방법은 부드럽게.
조직에도 관절이 필요하다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뼈가 단단해서만이 아니다. 뼈와 뼈 사이에 관절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도 그렇다. 규정과 절차는 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규정으로 해결하려 하면 조직은 뻣뻣해진다. 현장의 판단, 예외를 논의할 통로, 다른 부서와 협의할 공간, 실패 후 다시 수정할 기회. 이런 것들이 조직의 관절이다. 강한 조직은 뼈만 단단한 조직이 아니라 관절이 잘 움직이는 조직이다.
유연성을 결정 회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의견을 계속 듣기만 하고 결정을 미룬다면 조직은 지친다. 충분히 들었으면 결정해야 한다. 다만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을 때는 그 결정을 다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부드러운 리더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다. 결정할 때는 결정하지만, 결정한 뒤에도 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회의에서 누군가 내 의견과 다른 생각을 말했을 때 곧바로 설명하지 않아 보자. 먼저 물어보자.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오래된 업무방식 하나를 골라 다시 질문해 보자.
“우리가 이것을 계속하는 이유가 지금도 유효한가?”
전통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유가 사라졌는데 방식만 남았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습관일 수 있다.
우리 조직에서는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말이 얼마나 자주 들리는가?
나는 나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는가?
강한 리더는 한 번도 굽히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