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흰 구름 아래 삶의 속도를 다시 배우다

by진경수
“흥룡사와 백운계곡을 지나 가파른 제2코스로 정상에 오른 뒤 같은 길로 돌아온다. 막힌 길을 받아들이고, 한쪽 시선의 한계를 깨달으며, 몸이 허락하는 속도로 걷고 끝까지 안전하게 귀환하는 지혜를 배운다.”



DSCN6840.JPG백운산 정상/사진 진경수



정상 : 백운산 903.1m

출발 : 백운계곡주차장

코스 : 제2코스 왕복

주제 : 절제와 귀환

산행일 : 2026. 9. 19.



포천 백운산 등산지도.png




01. 오르되 마음은 낮게


DSCN6666.JPG흥룡사/사진 진경수




“산에서는 가고 싶은 길보다 갈 수 있는 길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통제된 제3·4·5코스 앞에서 제2코스로 방향을 정한다. 막힌 길을 억지로 넘지 않고 발걸음을 돌리는 일도 산행의 일부다. 삶에서도 의지만으로 열리지 않는 길이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지금 허락된 길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절제다.



“몸은 정상을 향해 오르되 마음은 낮고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흥룡사의 적막 앞에서 분주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몸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는 일과 마음을 낮추는 일이 함께할 때 산행은 비로소 공부가 된다. 성취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태도가 삶의 높이를 결정한다.




DSCN6687.JPG가을의 색을 입기 시작한 백운계곡/사진 진경수




“한쪽만 보고 내린 판단은 아무리 확신에 차 있어도 온전한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백운계곡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채 제2코스 들머리를 지나쳤다. 이정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쪽 풍경만 바라보느라 반대편 표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면에 또 다른 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판단은 비로소 겸손해진다.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되돌아보는 법을 배운다. 되돌아가는 걸음은 낭비가 아니다. 잘못을 알아차리고 방향을 바로잡는 사람만이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다시 설 수 있다. 산은 앞으로만 가는 힘보다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지혜를 먼저 묻는다.




02. 몸이 허락하는 속도로 걷다


DSCN6718.JPG암릉을 오르다/사진 진경수




“하고 싶은 일의 열정과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것, 그것 또한 공부다.”

잠이 부족한 몸은 초입부터 거친 숨으로 신호를 보낸다. 마음은 더 많은 일을 원하지만 몸은 자신의 형편도 살펴달라고 말한다. 열정은 소중하지만 몸을 소진시키는 열정은 오래갈 수 없다. 오래도록 나답게 살려면 의욕과 회복의 시간을 함께 돌보아야 한다.



“누군가 미리 마련해 놓은 작은 도움이 지친 산객의 힘을 덜어준다.”

암릉에 박힌 철제 스테이플과 안전밧줄이 손과 발을 붙든다. 산길의 작은 시설처럼 삶에서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배려에 기대어 고비를 넘어왔다. 혼자 이룬 것처럼 보이는 걸음마다 타인의 수고와 마음이 놓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DSCN6737.JPG백운산 고거목/사진 진경수




“서두르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찾던 것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르는 내내 숨어 있던 정상은 잠시 걸음을 멈추자 소나무 가지 사이로 모습을 보인다. 간절할수록 앞만 보며 서두르지만, 조급함은 오히려 시야를 좁힌다. 멈추어 숨을 고르고 주변을 찬찬히 바라볼 때 방향도 목적도 한층 선명해진다.


산은 가파른 오르막 사이에 완만한 능선과 내리막을 마련해 다시 걸을 힘을 준다. 고난이 영원하지 않듯 기쁨도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오르내림이 삶의 본래 모습임을 안다면 눈앞의 형편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호흡으로 걸어갈 수 있다.




03. 정상보다 귀환이 중요하다


DSCN6864.JPG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은 듯 보이는 백운산 정상/사진 진경수




“정상의 가치는 멀리 바라보는 풍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정상에서는 장쾌한 조망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까지 흘린 땀과 포기하지 않고 내디딘 발걸음이 마음속에 이미 하나의 풍경을 완성했다. 목적지의 화려함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정상은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내일을 향해 다시 내려서기 위한 자리다. 성취는 삶의 끝이 아니라 되돌아갈 힘을 얻는 잠시의 쉼이다. 산에서 얻은 기운과 깨달음을 일상으로 가져갈 때 비로소 정상에 오른 의미가 완성된다.




DSCN6806.JPG흑룡봉 뒤로 수덕바위봉을 거쳐 석룡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사진 진경수




“산행도 삶도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하산 중 놓친 카메라는 렌즈 후드가 먼저 부서지며 지켜주었다. 작은 부품 하나가 제 몸으로 더 소중한 것을 보호했다. 익숙해졌다는 안도감이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순간,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끝에 가까울수록 마음과 발밑을 더 세심히 살펴야 한다.


백운산에서 배운 것은 빨리 오르는 법이 아니라 오래 걸을 수 있는 속도였다. 갈 수 있는 길을 받아들이고, 보지 못한 면을 돌아보며,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 그 모든 과정이 하나로 이어져 온전한 산행과 삶을 만든다.




DSCN6834.JPG광덕산 능선/사진 진경수



산이 남긴 질문

나는 마음의 속도에 몸을 억지로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정상에 올랐다는 안도감 속에서도 끝까지 귀환의 길을 살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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