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도심에서 나답게 사는 행복을 지키다

by진경수
“동문에서 금정산성을 따라 제3·4 망루와 원효봉을 지나 금샘과 고당봉에 오른다. 거친 길에서 말과 행동을 살피고, 망루에서 내면의 나를 지키며, 이름과 지위를 내려놓은 산객으로 삶의 오르내림을 배운다.”



DSC_0317.JPG금정산 정상/사진 진경수



정상 : 고당봉 801.5m

출발 : 동문주차장

계획거리 : 약 12km 원점회귀

주제 : 절제와 본질

산행일 : 202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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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말을 살피고 나를 지키다



DSC_0065.JPG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제3망루/사진 진경수




“말은 한 번 더 헤아려 부드럽게 건네고, 행동은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

제3망루로 향하는 길에는 풀과 뾰족한 가지가 몸을 스친다. 산길에서는 가시와 돌부리를 경계하면서도 삶에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과 무심코 드러내는 행동을 놓치기 쉽다. 보이는 상처보다 말에 다친 마음이 더 오래 아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친 숲길이 일깨운다.



“바깥을 지키는 일보다 내면의 나를 잃지 않는 일이 먼저다.”

병사들이 나라와 백성을 지켰던 제3망루에서 오늘의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다.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을 좇다 보면 남이 만든 모습으로 살아가기 쉽다. 소음 속에 묻힌 참된 나를 되찾고, 남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오래 풀어갈 숙제다.




DSC_0102.JPG금정산성 제3망루에서 바라본 해운대/사진 진경수




“유리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지 않고, 형편에 따라 제 뜻을 바꾸지도 않은 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왔다.”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는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도 바위와의 의리를 지킨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우직함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고집스럽게 자신을 내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일이다.


망루 역시 높은 곳에 있으면서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바위틈에 몸을 낮추고 산세에 기대어 제자리를 지킨다. 진정한 높이는 타인을 내려다보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더 넓은 세상을 품는 데 있음을 배운다.




02. 이름을 내려놓고 본질을 바라보다



DSC_0132.JPG제3망루에서 바라본 금정산 능선/사진 진경수




“오늘만큼은 이름과 지위를 내려놓고, 무명의 산객으로 걷고 싶다.”

부채바위와 무명암, 의상봉은 시선을 옮길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붙인 이름은 대상을 이해하도록 돕지만, 수억 년의 시간과 생명의 신비를 모두 담아내지는 못한다. 이름과 직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꾸미지 않은 나와 눈앞의 자연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산행은 얼마나 멀리 걸었는가 보다, 무엇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는가를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싱그러운 풍광 앞에서 걷는 시간보다 멈춰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빠르게 지나가면 거리는 남지만 장면은 마음에 머물지 못한다. 삶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가 보다 무엇 앞에서 마음을 열고 오래 머물렀는가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DSC_0170.JPG동자 바위, 제4망루,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사진 진경수




“하나의 길을 놓쳤다고 해서 오늘의 산행 전체를 잃은 것은 아니다.”

제4망루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길을 놓쳤다. 눈앞의 봉우리에 닿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가지 못한 길까지 품을 때 여정은 온전해진다. 삶에서도 모든 기회를 붙잡을 수는 없다. 놓친 것을 실패로만 여기지 않고 이미 걸어온 길의 의미를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의상대사의 말처럼 하나는 전체와 이어지고 전체는 하나 안에 스며 있다. 의상봉에 직접 오르지 못했어도 금정산의 모든 길 속에 그 봉우리가 있다. 완성은 빠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부족함과 아쉬움까지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03. 오름과 내림으로 삶의 보법을 배우다



DSC_0208.JPG제4망루와 의상봉/사진 진경수





“오르막에서 자만하지 않고 내리막에서 낙심하지 않으며, 그저 내딛는 한 걸음에 마음을 다한다.”

북문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되풀이한다. 한 고비를 넘었다고 오름이 끝나지 않고, 잠시 내려선다고 모든 길이 편안해지지도 않는다. 좋은 날과 힘든 날이 번갈아 찾아와 하나의 생을 이루듯, 산의 굴곡도 모두 합쳐져 하나의 여정이 된다.


내려오는 길에는 몸의 무게가 무릎에 고스란히 실린다. 삶도 절정을 지난 뒤일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주고, 짊어진 무게를 무엇부터 내려놓을 것인지 살피며 천천히 걸어야 마지막 길도 아름다워진다.





DSC_0253.JPG금정산 고당봉 오르는 길/사진 진경수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무엇을 깨달았느냐가 산행의 깊이를 결정한다.”

고당봉에 서자 부산 시가지와 바다, 낙동강과 내륙의 산줄기가 한눈에 열린다. 그러나 정상의 풍경보다 오래 남는 것은 길에서 배운 마음이다. 거친 가지 앞에서 말을 살폈고, 망루에서 나를 지켰으며, 이름 없는 산객으로 본질을 바라보았다.


금정산은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산이 내어주는 지혜는 누구에게나 같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가는 깊이는 산객마다 다르다. 산을 내려온 뒤 어떤 말과 행동으로 살아낼 것인지가 오늘 산행의 진짜 귀환이다.




DSC_0323.JPG고당봉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사진 진경수




산이 남긴 질문


나는 세상의 시선을 지키느라 정작 내면의 나를 잃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내 말과 행동은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길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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