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천년의 길에서 오늘의 마음을 읽다

by진경수
“삼릉에서 출발해 금오봉에 오른 뒤 용장사지를 거쳐 용장마을과 포석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이다. 불상과 석탑, 왕릉과 절터를 만나는 산행에서 남산은 형상보다 깊은 마음, 천년의 역사와 오늘을 잇는 시선, 사라진 자리에서도 남아 있는 믿음의 의미를 들려준다.”



DSC_0214.JPG금오산 정상/사진 진경수




정상 : 금오봉 468m

출발 : 서남산주차장

계획거리 : 약 11km 원점회귀

주제 : 마음과 역사

산행일 : 2025. 8. 30.




금오봉(남산) 등산지도.png





01. 형상 너머의 마음을 만나다


DSC_0027.JPG간절한 기도/사진 진경수




“불심은 완전한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

삼릉의 솔숲을 지나 훼손된 석조여래좌상 앞에 선다. 온전한 모습을 잃은 불상 앞에서도 한 노인의 기도는 간절하고 평온하다. 믿음은 완성된 형상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부족한 모습 앞에서도 마음을 다해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에 수행의 본뜻이 깃든다.


형상에 집착하기보다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옮기는 일이 중요하다. 남산의 산길은 불상을 찾아가는 길이면서 내 마음의 흐트러짐을 살피는 길이다. 원하고 바라기보다 마음을 닦는 한 걸음이 천년의 길을 오늘의 공부로 바꾼다.




DSC_0167.JPG바둑바위에서 바라본 단석산, 선도산, 옥녀봉/사진 진경수



“산을 바라보는 일이 곧 역사를 읽는 일이 된다.”

바둑바위에 올라서면 단석산과 선도산, 옥녀봉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눈앞의 산마다 신라의 인물과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산줄기는 오래된 기록을 품은 바카라장이 되고, 발걸음은 그 바카라을 한 장씩 넘기는 독서가 된다.


금송정 터에서는 천년 전 옥보고의 거문고 선율을 떠올린다. 세월은 흘렀지만 산은 그대로이고 사람은 여전히 산에서 마음을 쉬어간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지나간 일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시간 속 사람의 마음을 오늘의 삶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02.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에 세우다


DSC_0249.JPG고위봉 능선을 배경으로 자리한 용장사곡 삼층석탑/사진 진경수




“정상이라는 것은 꼭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금오봉에 닿지만 정상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기대했던 조망을 내어주지 않는다. 정상의 가치는 멀리 보이는 풍경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흘린 땀과 만난 사람, 스스로 다독이며 옮긴 걸음이 이미 충분한 풍경이다.


우리는 목표에 도달하면 눈에 보이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도착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지나온 과정을 바라보게 한다. 성취의 의미는 정상에서 얻는 장면보다 그 길에서 달라진 마음에 남는다.




DSC_0247.JPG연화대좌/사진 진경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위봉 능선을 배경으로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불상이 사라진 빈 연화대좌가 눈에 다가온다. 빈자리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불상을 대신 앉혀본다. 사라진 형상은 부재를 말하지만,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억과 믿음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절은 무너져 터만 남고 불상은 머리를 잃었지만 신라인이 돌과 바위에 새긴 간절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오래된 물건을 보존하는 일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03. 내려가는 길에서 인내를 배우다


DSC_0280.JPG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사진 진경수




“산은 내려가는 길에서도 끝까지 걸어가는 법을 가르친다.”

금오봉을 내려선 뒤에도 뜨거운 햇볕과 거친 돌길이 이어진다. 오르막에서는 다리의 힘을 시험하던 산이 하산길에서는 더위와 갈증을 견디는 인내를 묻는다. 목표에 닿았다고 여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삶은 내려놓고 돌아오는 과정까지 온전히 걸어야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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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걷는다는 것은 오래된 길 위에서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용장골의 대나무 숲과 맑은 계곡을 지나 경애왕릉의 소나무 숲에 닿는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여전히 남산의 천년 속에 머문다. 이번 산행은 11km를 완주한 기록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유산에 깃든 신라인과 수행자의 마음을 더듬어본 순례였다.


자연을 정복하지도 무조건 따르지도 않고 산의 지형을 살려 탑과 불상을 세운 지혜가 남산 곳곳에 남아 있다. 오래된 길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 길을 걷는 오늘의 사람에게 자신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DSC_0011.JPG삼릉 송림/사진 진경수




산이 남긴 질문


나는 눈에 보이는 형상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가

오래된 길 위에서 오늘의 나는 무엇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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