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에는 이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든 대답하려 했다. 직바카라이 생기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그랬다.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모른다고 하면 능력이 없어 보일 것 같았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았는데 답을 주지 못하면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범위 안에서 대답하려 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아는 것은 힘이다. 다만 살아보니 그 힘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있었다. 조금 아는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오래 살았다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인다. 수많은 일을 겪고, 사람을 만나고, 실패도 해본다. 같은 종류의 문제가 반복되면 대략 어디에서 문제가 생길지도 짐작하게 된다. 경험은 분명 귀한 자산이다. 바카라에서는 배울 수 없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경험에는 작은 함정도 숨어 있다.
“내가 해봐서 알아.”
이 말이다. 처음에는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이지만 자칫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문이 된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오래 전의 경험으로 오늘을 판단할 수 있다. 사람은 서로 다른데 전에 만났던 사람의 모습으로 눈앞의 사람을 미리 짐작할 수도 있다. 특히 기술의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어제의 정답이 오늘도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오래 일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안다는 증명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일할수록 가끔은 내 경험을 바카라상 한쪽으로 밀어놓고 물어야 했다.
‘지금도 그런가?’
이 짧은 질문 하나가 생각의 창문을 다시 열어준다.
모르는 것은 빈칸이 아니라 문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면 모르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를 읽었는데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두 개의 답 사이에서 망설인다. 분명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힌다. 예전에는 그런 순간이 싫었다. 모르는 것이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모르는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은 공부할 곳을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는 것에는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 모르는 곳에서 공부가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름’은 부끄러운 빈칸이 아니라 아직 열어보지 않은 문이 된다. 문 앞에서 돌아서느냐, 손잡이를 잡아보느냐. 그 차이가 배움을 만든다.
노자는 『도덕경』 제71장에서 말한다.
知不知 尙, 不知知 病 (지부지 상, 부지지 병)
모르면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귀하지만, 모르면서 안다고 여기는 것이 병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 마음에 남는다. 노자는 많이 알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앎의 가장자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어디부터 모르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다음 공부가 가능하다.
질문하는 사람이 오래 배운다
예전에는 좋은 대답을 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간다.
“왜 그렇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내 생각이 틀렸다면 무엇을 놓친 걸까?”
질문에는 작은 틈이 있다. 그 틈으로 새로운 생각이 들어온다. 반대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 질문이 사라진다. 질문이 사라지면 배움도 조금씩 메말라간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것을 만나면 가능한 한 물으려고 한다. 때로는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에게도 묻는다. 처음 접하는 기술이라면 설명해 달라고 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이도 경력도 잠시 내려놓는다.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배움 앞에서는 나이보다 호기심이 먼저다.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공부가 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공부다. 오랫동안 믿어온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먼저 저항한다.
‘그래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예전에는 분명 그랬는데….’
자꾸 변명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틀린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다고 그것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와 같다. 잘못 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돌아가야 한다. 이미 걸어온 거리가 아깝다고 계속 가면 더 멀어진다. 생각도 그렇다. 자기 수정은 패배가 아니라 방향을 되찾는 일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내가 잘못 알았습니다”라는 말도 조금씩 편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모르는 것을 많이 만날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내가 배울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모르는 것을 모두 없애는 것이 공부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모르는 것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 것.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틀렸다는 것을 알면 고쳐 쓰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내 생각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이 오래 배우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한번 배워보겠습니다.”
내게는 그 두 문장 사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