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졌는데도 공부는 남았다

by진경수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화면을 열고,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결과를 본다. 불합격. 참 짧은 글자다. 그런데 그 두세 글자가 그동안의 시간을 한순간에 무겁게 만든다. 바카라상에 앉아 보낸 저녁이 떠오르고, 반복해서 풀었던 문제들이 생각난다.


‘조금만 더 할걸.’

‘그 부분을 한번 더 봤어야 했는데.’


아쉬움은 언제나 결과가 나온 뒤 더 정확해진다. 합격했으면 웃었을 것이다. 떨어졌으니 속상하다. 나는 실패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 않다. 떨어지면 아프다. 노력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실패를 아름답게 꾸미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흔히 실패도 좋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시험에 떨어진 바로 그날 그런 말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실패는 우선 실패다. 부족했던 것이고,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나 역시 떨어지고 나면 내 노력을 돌아본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는 조금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공부를 미룬 날도 있었고, 아는 내용이라고 대충 넘어간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정해야 한다. 이번에는 내 노력이 부족했다. 그 인정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시작할 곳을 알려준다. 실패를 운이나 환경 탓으로만 돌리면 마음은 잠시 편할 수 있지만 다음 시험에서도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족함을 인정하면 아프지만 길이 생긴다.


‘그럼 다음에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실패가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상하게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며칠이 지나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뒤 바카라상 위의 바카라을 다시 본다. 수많은 밑줄. 여백에 적어놓은 메모. 틀린 문제 옆의 표시. 몇 달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그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시험에는 떨어졌는데, 공부한 나는 시험 전의 나와 같지 않았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지만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까지 불합격한 것은 아니었다. 배운 것은 남아 있었다. 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고, 익숙하게 지나쳤던 현상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업무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공부했던 내용이 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시험을 위해 배운 지식이 시험장 밖에서 자기 쓸모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합격과 공부는 같은 길을 걷지만 마지막 목적지는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시험은 나를 평가하지만, 공부는 나를 확장한다. 시험 결과는 한 번의 판정이지만 배움은 그 뒤의 삶으로 흘러간다.



틀린 문제는 내가 모르는 곳에 깃발을 꽂는다


합격했을 때보다 떨어졌을 때 시험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디서 틀렸을까. 왜 헷갈렸을까. 무엇을 잘못 이해했을까. 틀린 문제는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꽤 친절하다.


‘당신은 여기를 아직 모릅니다.’


하고 정확한 자리에 깃발을 꽂아주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보다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낫다. 그때부터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知不知 尙 (지부지 상)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귀하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이 말을 지적 겸손에 관한 문장으로만 읽었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공부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패는 자존심보다 공부법을 먼저 고치라고 했다


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다른 결과만 기다릴 수는 없다. 떨어졌다면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한다. 공부 시간을 늘릴 수도 있고, 기초부터 다시 볼 수도 있다. 문제풀이 방법을 바꾸거나, 내가 이해했다고 착각했던 부분을 다시 살펴야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나라는 사람 전체에 붙이지 않는 것이다. 시험에 실패한 것이지 내가 실패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실패는 공부를 멈추게 한다.


‘나는 안 되는가 보다.’


그러나 결과를 하나의 자료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방법으로는 부족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다시 손댈 곳이 보인다. 실패가 낙인이 아니라 수정표시가 된다. 나는 그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수록 실패가 덜 부끄러워졌다


젊었을 때는 실패를 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알면 부끄럽고, 내 능력이 부족해 보일까 마음이 쓰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조금 편해졌다. 떨어졌으면 떨어진 것이다. 다시 보면 된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 시험 결과에 오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나이에 뭘 또 해.”


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번에는 부족했으니 다시 해보자.”


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두 번째 말을 선택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 가장 두려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할까 봐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산에서도 길을 잘못 들 때가 있다. 한참 걷다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표지판이 보이지 않고 길이 희미해진다. 그때 가장 위험한 것은 이미 많이 왔다는 이유로 계속 가는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마음 때문에 더 깊이 잘못된 길로 들어갈 수 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는 걸음이 아깝지만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공부도 삶도 비슷했다.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은 후퇴가 아니라 방향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다시 바카라을 펼치는 사람


불합격했던 바카라을 다시 펼치는 날이 있다. 처음에는 썩 반갑지 않다. 전에 보았던 밑줄이 있고, 외웠다가 잊은 내용이 있다. 하지만 몇 장 넘기다 보면 신기하게도 예전보다 쉽게 읽히는 부분이 생긴다. 한번 공부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실패했다고 출발점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이 다시 공부할 힘을 준다. 이제 나는 실패를 성공의 반대말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길을 발견하게 하는 갈림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패를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다. 가능하면 합격하고 싶다. 공부했다면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 그러나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 전체를 실패라고 부르지는 않으려 한다.


그 안에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부족함을 발견했다면, 다시 시작할 이유를 얻었다면, 이미 내 안에는 무엇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카라상 위에 다시 바카라을 올려놓는다. 전에 틀렸던 부분을 펼친다. 연필로 작은 표시를 한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한번 더 읽는다. 모르면 찾아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여기가 내가 더 배워야 할 자리구나.’


살아보니 실패는 때때로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었다. 닫힌 문 앞에서 나를 잠시 세워놓고, 주머니 속에 아직 다른 열쇠가 없는지 찾아보게 하는 사람이었다.


시험에는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배움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격증은 얻지 못했어도 공부는 내 안에 남는다. 그리고 그 공부가 어느 날 다시 나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또 바카라을 펼친다.


떨어졌는데도, 배운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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