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전날이면 나이가 무색해진다. 바카라상 위에는 바카라과 필기한 종이가 펼쳐져 있고, 자꾸 헷갈리는 부분에는 다시 밑줄을 긋는다.
‘이것은 꼭 기억해야 하는데.’
몇 번을 읽었는데도 돌아서면 흐릿해진다. 젊었을 때 같지 않은 기억력을 탓하다가 다시 바카라을 펼친다. 이제 그만 자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페이지만 더 넘긴다.
시험 날 아침도 묘하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 잘 볼 수 있을까. 공부한 곳에서 문제가 나올까. 실수하지 않을까. 교실에 들어가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는다. 주변에는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 사이에 앉아 시험지를 기다리다 보면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왜 아직도 시험을 보고 있는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이 나이에 반드시 자격증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또 바카라을 샀고, 공부했고, 시험장에 와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합격하고 싶어서 공부했다
처음에는 아주 분명했다. 합격하고 싶었다. 합격의 기쁨이 좋았다. 내가 노력한 것이 결과로 확인되는 순간은 지금도 기쁘다. 자격증 한 장에는 단순한 종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했고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하나의 증표였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할 수 있다.’
그 마음은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더 커진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주변에서는 이제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 말에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다.
그러나 나는 ‘쉬어도 된다’는 말이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에는 쉼이 필요하지만 생각까지 은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익숙한 것만 반복하며 살다 보면 생각이 먼저 굳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바카라을 펼친다. 처음 보는 용어와 씨름한다. 문제를 틀리고 다시 찾아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꾸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다.
공부는 내 삶의 문을 하나씩 늘려주었다
한 분야를 공부하면 신기하게도 그 공부가 그 분야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지식은 다른 지식으로 건너가는 징검돌이 되었다.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기술이 보이고, 일하면서 지나쳤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지식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생각의 길이 하나 더 생긴다. 나는 이것이 공부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세상에 들어가는 문도 늘어난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건축물을 보고 구조를 생각하게 되고, 재료 하나를 보면서 제작 과정과 성능을 떠올린다. 어떤 기술을 공부하다가 다른 산업과 연결되는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공부는 시험과목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읽는 방법이 된다. 지식이 넓어지면 응용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 새로운 일이 보이고,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배움이 경제활동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비용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배움은 삶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작은 자본이기도 하다.
시험은 나를 깨우는 작은 종소리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경계하고 싶은 것은 실패보다 익숙함에 눌러앉는 마음이다.
‘이 정도면 됐지.’
‘내가 이것을 몇 년이나 했는데.’
‘이 나이에 뭘 더 배우겠어.’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새로운 것은 점점 불편해진다. 아는 것만 이야기하게 되고, 해오던 방식만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시험은 그런 나를 가끔 낯선 자리로 데려간다. 모르는 문제 앞에 앉혀놓는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정답은 내 나이도, 경력도 봐주지 않는다. 그것이 좋다.
시험지 앞에서는 다시 학생이 된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틀리면 고쳐야 한다. 나는 그 단순함이 좋다. 시험은 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아직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33장에서 말한다.
知人者智 自知者明(지인자지 자지자명).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밝음이라는 뜻이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시험은 무엇을 알고 있는지만 확인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보여준다. 어디까지 이해했고, 어디에서 어설펐으며,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는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시험 결과는 때때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직하다. 그 앞에서 변명할 수도 있다. 문제가 어려웠다고, 운이 없었다고, 시간이 부족했다고. 그런 이유가 실제로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돌아봐야 할 곳은 나 자신이다.
‘나는 충분히 준비했는가.’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 그것도 공부라고 생각한다.
합격보다 더 오래 남는 것
시험이 끝나면 점수는 지나간다. 합격증도 어느 날 서랍에 들어간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만들어진 습관은 남는다.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습관. 궁금하면 찾아보는 습관. 한번 이해되지 않으면 다시 읽는 습관. 틀린 것을 알았을 때 고치는 습관. 나는 그런 습관들이 자격증보다 오래가는 공부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도 시험을 본다. 합격하면 기쁘게 웃고 싶다. 그 기쁨을 굳이 초연한 척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공부한 시간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험은 하루에 끝나지만, 배운 것은 내 다음 날로 따라온다.
시험지를 받는다. 첫 장을 넘긴다. 아는 문제가 보이면 반갑고, 처음 보는 문제가 나오면 잠시 막막하다. 그 순간에는 나이도 직함도 별 소용이 없다. 그저 문제 앞에 앉은 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그 자리가 좋다.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아직 모르는 것이 있어서. 그리고 아직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다시 한번 해보자.’
어쩌면 내가 아직도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인지도 모른다. 합격증을 한 장 더 갖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삶에 아직 다음 페이지가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