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을 넘기는 것은 권력을 잃는 일이 아니다

by진경수

결재판이 다시 돌아왔다


오랫동안 대표가 직접 결재하던 업무 하나를 임원에게 넘겼다.


“앞으로 이 정도 사안은 직접 판단해서 처리하세요.”


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결재서류가 다시 대표의 바카라상 위에 놓였다.


“이건 왜 나한테 가져왔습니까?”

“대표님이 한 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대표는 잠시 서류를 들여다본다. 익숙한 일이다. 몇 군데 고치고 싶은 곳도 눈에 들어온다. 펜을 들려다가 멈춘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임원이 설명한다. 듣고 보니 자신이라면 조금 다르게 했겠지만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니다. 대표는 서류를 돌려준다.


“그렇게 하세요.”


임원이 나간 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직접 결정하지 않았는데 일이 진행된다. 처음에는 조금 허전하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해야 할 다음 일인지도 모르겠다.’




27 - 결정을 건네는 리더.png




권한은 말로 넘겨지지 않는다


리더는 흔히 말한다.


“나는 직원들에게 권한을 많이 줍니다.”


하지만 권한은 선언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산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와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해놓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다시 고친다면 권한은 사실상 넘어간 것이 아니다. 결정권은 주었지만 정답은 여전히 리더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권한 위임은 내가 하지 않았을 선택까지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無爲, 하지 않음이 아니라 대신하지 않음 앞에서 우리는 노자의 무위를 여러 번 만났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이 아니다. 리더십의 자리에서 다시 읽으면 더욱 분명해진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다 하지 않는 것. 직원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대신 해결하지 않고, 후배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결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순간에 답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 이런 ‘하지 않음’에는 오히려 인내가 필요하다. 내가 하면 더 빠르다. 내가 하면 실수도 적다. 그러나 계속 내가 하면 사람은 영원히 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리더가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덜 사용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능력이 자라기 시작한다.



弗居, 공에 머물지 않는다


『도덕경』 제2장에서 노자는 말한다.


功成而弗居. (공성이불거)

공을 이루되 그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리더에게 권한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성취와 조직을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내가 만들었다.’

‘이 고객은 내가 개척했다.’

‘이 시스템은 내가 세웠다.’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만들었다는 것과 영원히 내가 관여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좋은 성과를 만들었다면 이제 그 성과가 다른 사람의 손에서도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시작한 사업을 다음 사람이 바꾸더라도 받아들이고, 내가 만든 제도를 시대에 맞게 고치더라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공을 남기는 것과 공에 머무는 것은 다르다. 권한을 넘기면 리더의 일이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의 성격이 달라진다.


직접 결정하는 일은 줄어든다. 대신 판단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줄어든다. 대신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 커진다. 오늘의 성과를 챙기는 시간은 줄어들고, 다음 세대가 일할 환경을 만드는 시간이 늘어난다. 리더가 일을 놓는다고 리더십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리더십의 위치가 사람 앞에서 사람 뒤로 옮겨가는 것이다.



身退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9장의 功成名遂身退(공성명수신퇴)를 다시 떠올려본다.


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물린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 身退는 퇴임식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래 준비해야 한다. 결재 하나를 넘기고, 고객 하나를 연결해 주고, 회의 하나에서 빠지고, 후배가 결정하도록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는 횟수를 조금씩 줄여간다. 승계는 직바카라을 넘기는 하루의 행사가 아니라 권한과 신뢰를 조금씩 옮겨놓는 긴 과정이다. 권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처음의 리더는 직바카라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합시다.”


사람들이 따른다. 그러나 오래 남는 리더의 영향력은 명령과 다르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는 품질만큼은 이렇게 지켜왔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숨기지 않는 것이 우리 방식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이 회사의 문화입니다.”


그때 리더의 권력은 사라졌지만 리더가 세운 기준은 문화가 되어 남아 있다. 어쩌면 이것이 권력보다 더 오래가는 영향력일 것이다.



내가 리더라면


내가 가진 권한을 세 종류로 나누어보자.

아직 내가 가져야 할 권한. 지금부터 함께 행사할 권한. 이제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권한.


그리고 세 번째 항목에서 하나를 실제로 넘겨보자. 단, 일만 넘기지 말자. 정보와 자원, 결정권과 바카라임까지 함께 넘긴다. 그 뒤에는 한 걸음 물러나 기다려본다.



리더에게 묻는다


나는 권한을 준다고 하면서 최종 정답은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 문장으로 남기는 노자 리더십


권한을 넘긴다고 리더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있던 힘이 여러 사람의 판단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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