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성과는 내가 떠난 뒤에 나타난다

by진경수

빈 의자 하나


오랫동안 사용하던 사무실을 떠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바카라상 위의 물건을 정리한다. 명패도 치운다. 서랍에는 오래된 명함과 수첩이 남아 있다. 벽에는 함께했던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빈 의자를 바라본다. 이상한 질문이 떠오른다.


‘내일부터 이 회사에는 무엇이 달라질까.’


그리고 더 어려운 질문이 이어진다.


‘무엇은 달라지지 않아야 할까.’



리더의 성과는 재임 중에만 측정할 수 없다


우리는 리더의 성과를 숫자로 평가한다. 재임 중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가. 수익은 얼마나 좋아졌는가. 새로운 사업을 얼마나 만들었는가. 물론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리더십에는 퇴임하는 날에는 아직 알 수 없는 성과가 있다. 그 사람이 떠난 뒤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후임자가 자기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직원들이 중요한 기준을 공유하고 있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리더의 이름 대신 시스템이 작동하는가. 좋은 사람이 계속 들어오고 성장하는가. 그것은 떠난 뒤에야 드러난다.



시스템을 남긴다는 것


리더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조직은 위험하다.


“그건 대표님만 아십니다.”

“그 고객은 대표님이 직접 관리합니다.”

“그 문제는 대표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이 말이 많을수록 리더는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조직은 취약해진다.


좋은 리더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조직이 알게 만든다. 경험을 기준으로 만들고, 노하우를 절차로 만들며, 개인의 관계를 조직의 관계로 옮긴다. 리더의 머릿속에 있던 것을 조직의 기억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시스템을 남기는 일이다.



문화는 리더가 없을 때 드러난다


더 깊은 것은 문화다. 문화는 벽에 붙어 있는 경영이념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가깝다.


품질 문제가 생겼다. 대표가 없어도 숨기지 않는가. 고객과 약속이 충돌한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원칙을 지키는가. 후배가 실수했다. 상사가 없을 때도 서로 돕는가. 그렇다면 리더가 오랫동안 강조했던 가치가 말에서 문화로 넘어간 것이다.


리더가 있어야만 지켜지는 원칙은 아직 문화가 아니다. 리더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지켜질 때 비로소 조직의 것이 된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시스템도 중요하고 문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리더가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할 줄 아는 사람. 정답을 외운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 자신만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조직 곳곳에 남아 있다면 리더 한 사람이 떠나도 조직의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키운다면 리더의 영향력은 이름 없이 이어진다.


내가 떠난 뒤 더 잘된다면 리더에게 가장 묘한 감정이 생길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내가 떠난 뒤 회사가 더 잘되는 것이다. 후임자가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고, 젊은 직원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며, 매출도 더 커진다. 한편으로는 기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작은 서운함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가 있을 때보다 더 잘하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보자. 그것이야말로 승계가 성공했다는 가장 분명한 장면일 수 있다. 후계자가 전임자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조직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앞으로 갈 수 없다. 좋은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좋은 리더도 그래야 한다. 이름을 남기는 것과 흔적을 남기는 것은 다르다 회사 역사에 이름이 남을 수 있다. 창업자, 대표이사, 회장. 그러나 이름이 오래 기록되는 것과 좋은 흔적이 오래 남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이 내 이름은 잊어도 괜찮다. 대신 이런 것들이 남으면 좋겠다. 어려울수록 품질을 지키는 습관. 사람의 의견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회의문화. 실패를 숨기지 않는 태도. 후배에게 기회를 주는 전통. 자기 공을 독차지하지 않는 리더들. 그런 것들이 이어진다면 한 사람의 이름보다 훨씬 오래간다. 사람의 이름은 희미해져도 그가 만든 좋은 방식은 다른 사람의 행동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 결재보다 마지막 질문


리더에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다면 나는 결재가 아니라 질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떠난 뒤 이 조직은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후계자 한 사람만 바라본다면 역시 위험하다. 조직이 공유하는 가치, 분명한 원칙, 일하는 시스템,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답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리더는 조금 안심하고 문을 나설 수 있다.



리더의 마지막 성적표


리더의 마지막 성적표에는 조금 다른 항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매출 얼마, 이익 얼마, 수주 얼마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결정되는가. 나 없이도 고객의 신뢰가 이어지는가. 후계자가 자기 방식으로 일하는가. 다음 리더가 계속 자라고 있는가. 원칙이 사람보다 오래 남는가. 이 질문의 답은 퇴임식 날에는 알 수 없다. 1년 뒤, 5년 뒤,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인다.


그래서 리더십의 마지막 성과는 재임 중에 자신이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성과인지도 모른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야 알게 되는 것


산행도 정상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산하고, 함께 간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고, 배낭을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한 번의 산행이 끝난다. 그리고 며칠 뒤 문득 생각한다.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보다 누구와 걸었는지, 누구의 손을 잡아주었는지, 누구와 웃었는지가 더 오래 남기도 한다.


리더의 시간도 그와 닮지 않았을까. 어떤 자리에 올랐는가 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그 자리까지 데려왔는가.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내가 떠난 뒤에도 누가 계속 이루고 있는가.

그것이 마지막에 남는 질문일 것이다.



내가 리더라면


오늘 종이 한 장을 꺼내 세 칸으로 나누어보자.


SYSTEM — 내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CULTURE — 내가 없어도 지켜졌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PEOPLE — 내가 없어도 다음 사람을 키울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빈칸이 많은 곳을 살펴보자. 그곳이 앞으로 리더가 자신의 시간을 더 써야 할 자리일 것이다.



28 - 시스템·문화·사람, 리더의 빈자리.png




리더에게 묻는다


내 경험은 개인의 노하우로 남아 있는가, 조직의 시스템으로 바뀌었는가?

내가 강조했던 가치는 내가 없을 때도 지켜지는가?



한 문장으로 남기는 노자 리더십


리더의 마지막 성과는 자신이 떠나는 날 완성되지 않는다. 떠난 뒤에도 사람과 문화와 시스템이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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