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화요일 오후, 정현이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강현은 바카라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간호사가 침대 옆으로 휠체어를 붙였다. 정현은 왼발에 힘을 주고 팔로 몸을 밀었다. 침대에 돌아와 눕자 이마로 땀이 흘렀지만 정현은 이 동작도 꽤 익숙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강현이 수건을 건넸다. 정현은 얼굴을 닦다가 물었다.
“학교 잘 다녀왔어?”
“어, 형.”
“가방은 왜 안 내려놔.”
강현은 바카라가방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간호사가 나간 뒤에야 바닥에 놓았다. 바카라 떨어지는 것과 다른 묵직한 소리가 났다.
“뭐야.”
강현이 지퍼를 열었다. 공바카라 아래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묶은 손잡이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오십 원짜리였다. 봉지 밑바닥이 처질 만큼 엄청난 양의 동전이 들어 있었다.
“어디서 났어?”
“마을금고에서 바꿨어.”
“얼마를.”
“이만 원.”
정현은 수건을 내려놓았다.
“이만 원이 어디서 났어.”
“만 원은 돼지 배 땄고, 또 다른 만 원은 지난 설날에 받은 거.”
“그게 그렇게 많았다고?”
강현은 봉지를 의자에 내려놓았다. 안에서 동전들이 낮게 미끄러졌다.
“내 거 맞아. 어제 다 세어 봤어.”
정현은 봉지를 봤다. 강현이 손잡이를 조금 벌렸다. 어제 주머니에 모았던 것과는 양이 달랐다. 가방 앞주머니에는 주말부터 모아 둔 동전이 든 천 주머니도 들어 있었다.
“형, 이거 다 백 원짜리로 바꾸면 살 수 있을까?”
“뭘.”
“형 신발.”
정현은 이불 밖의 왼발을 봤다.
“지금은 어차피 사도 못 신어.”
“나중에 신으면 되잖아.”
강현은 봉지 가장자리를 두 번 접었다가 폈다.
“형이 고른 걸로.”
“가격도 모르면서.”
“비싸겠지. 부족하면 또 오십 원짜리로 바꾸면 되지.”
“그러다 안 나오면?”
강현이 봉지 손잡이를 잡았다.
“어제도 나왔잖아.”
정현은 그 대답을 기다린 것처럼 봉지 안을 봤다.
정현이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러다 들키면 어떡하려고.”
“그러니까 빨리 하자.”
잠시 뒤 정현이 봉지를 당겼다. 팔에 무게가 실렸다. 이걸 전부 바꾸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하면 오래 걸려.”
강현이 고개를 들었다.
“두 개씩 해 보면 되잖아.”
“그렇게 해 봤어?”
“아니. 안 되면 다시 한 개씩 하면 되지.”
말을 하고 나서 강현은 형의 눈치를 봤다.
정현은 봉지 안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동전들이 손가락 사이로 밀려왔다.
“이번만 하고 이제 그만하자.”
강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은 동전 몇 개를 꺼내 환자복 주머니에 넣었다.
“봉지는 가방에 넣어서 아예 가방을 메고 가. 봉지째 들고 다니면 다 보이잖아.”
*
정현은 조금 쉰 뒤 간호사에게 산바카라 좀 하겠다고 전했다.
오래 앉아 있지 말고 다친 다리에 힘을 주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현은 알겠다고 하고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몸을 옮겼다. 강현은 옆에서 휠체어를 붙잡았다. 가방을 등에 멘 채라 몸을 숙일 때마다 안쪽에서 동전 뭉치가 턱 하고 움직였다.
“바카라 많이 들었네. 공부 열심히 하나 봐?”
간호사가 말했다.
강현이 웃기만 했다. 정현은 팔걸이에 힘을 줬다.
자판기 앞에서는 정현이 가방을 받아 무릎 위에 놓았다. 주머니에 넣어 뒀던 동전을 꺼내 강현에게 건넸다. 강현이 한 개를 넣고 레버를 돌렸다.
백 원이 나왔다.
어제와 정확히 같은 소리였다. 강현의 얼굴이 펴졌다.
다음 동전도 바뀌었다. 정현은 나온 백 원을 가방 안주머니에 따로 넣었다. 강현이 다시 한 개를 집으려 하자 말했다.
“두 개씩 해 봐.”
강현이 손을 멈췄다.
“진짜?”
“안 되면 그만하고.”
두 개가 차례로 들어갔다. 강현이 레버를 돌렸다. 잠깐 있다가 다시 돌리자 동전 두 개가 잇따라 반환구를 쳤다.
백 원 두 개였다.
강현이 기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정현도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를 내면 누가 볼 것 같아서 두 사람 다 아싸!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웃었다.
다음에는 셋을 넣었다. 하나가 바로 나오고, 나머지는 잠시 뒤에 떨어졌다. 강현이 모두 집어 손바닥을 폈다.
정현은 백 원 세 개를 받아 가방 안주머니에 넣었다. 입구를 잡고 있던 손가락이 떨렸다.
“좋았어. 서둘러.”
정현도 신이 나서 새 동전을 꺼내 동생에게 건넸다.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정현이 먼저 돌아봤다. 남자가 빈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계단 쪽으로 갔다. 강현은 동전을 넣던 손을 내린 채 기다렸다.
“갔어.”
정현이 말했다.
강현이 다시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정현이 건넨 것에 자기 손안의 동전까지 보탰다. 강현은 동전을 잇달아 밀어 넣다가 몇 개째인지 놓쳤다. 정현도 봉지 안의 동전을 꺼내느라 동생이 몇 개를 보탰는지 보지 못했다. 타라락타라락타라라라락. 동전들이 안으로 떨어졌다.
강현이 레버를 움직였다. 걸리는 듯하다가 돌아갔다. 다시 두 번 레버를 돌리자 반환구로 동전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라라락촤라라라라락. 넣은 것은 오십 원짜리였는데 백 원짜리 동전들이 세기도 힘들 만큼 쏟아졌다.
두 형제의 입이 귀에 걸렸다.
“기다려.”
정현이 말했다.
복도 끝에서 카트 바퀴가 삐걱거렸다. 강현은 손을 멈췄다.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자 정현이 다시 동전을 건넸다.
두 형제는 신이 나서 오십 원짜리를 잇달아 투입구에 넣었다. 강현이 레버를 돌릴 때마다 정현은 반환구의 백 원짜리를 걷어 가방 안주머니에 넣었다. 얼마가 들어가고 나왔는지는 더 이상 세지 않았다. 그저 반사적으로 동전을 건네고, 넣고, 꺼냈다. 얼마 동안이나 그러고 있었을까.
강현이 레버를 다시 돌렸다.
덜컥.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소리가 났다.
“어? 한 개 더 넣어 볼까?”
“넣지 마.”
강현이 레버를 다시 두 번 돌렸다. 자판기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강현이 신경질적으로 레버를 돌렸다. 나오지 않자 발로 자판기를 두 번 찼다.
“살살 하라고.”
“안 나오잖아.”
정현은 동생을 잡으려 했다. 강현이 옆으로 몸을 빼더니 자판기 아래쪽을 한 번 더 발로 찼다.
쾅.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강현이 스스로 놀라 뒤를 봤다. 그러고는 다시 반환구를 들여다봤다.
“그만해.”
“잠깐만.”
강현이 한 번 더 발을 들었다.
“강현아.”
뒤에서 어머니가 불렀다.
발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장바구니를 든 채 서 있었다. 정현은 무릎 위의 가방을 덮으려던 손을 멈췄다. 벌어진 지퍼 사이로 동전 봉지가 보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강현이 먼저 대답했다.
“돈이 안 나와서.”
“그래서 발로 차?”
강현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정현 앞으로 다가왔다.
“가방 안에 든 건 뭐니.”
정현은 손을 옆으로 뺐다.
어머니는 봉지를 들어 보았다. 손목이 아래로 당겨졌다.
“이 돈 어디서 났어.”
강현이 형을 봤다. 정현은 동생이 먼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강현은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엄마, 그게…….”
*
어머니는 봉지를 가방에 도로 넣고 계단에서 떨어진 벽 쪽으로 휠체어를 옮겼다. 강현을 정현 옆에 세웠다.
“처음부터 말해 봐.”
강현이 자판기 아래에서 오십 원을 주운 이야기부터 했다. 껌을 사고 다시 확인했다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자기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알리고 싶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끊지 않았다.
강현이 토요일에 형을 데리고 왔다고 하자 정현이 말을 이었다. 자신이 직접 레버를 돌렸고, 다시 해 보려고 동전을 바꿔 오라고 시켰다고 했다. 오늘 여러 개를 넣어 보라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고.
“가방에 넣으라고도 했어. 안 보이게.”
강현이 형을 쳐다봤다. 정현은 가방 지퍼에서 손을 뗐다.
“정현아, 너 이거 잘못된 행동인 거 알았어, 몰랐어?”
“……알았어.”
“알고도 같이 했어?”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괜히 운동화 코로 바닥을 찧고 있었다.
“근데 자판기가 먼저…….”
강현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어머니가 자판기를 봤다.
“어디가 고장 났는지는 고치는 분이 봐야겠지만, 너희는 넣은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나온다는 걸 알고도 계속 남의 돈을 가져간 거야. 그건 도둑질이야.”
강현의 입이 닫혔다.
어머니는 자판기 앞에 붙은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정현은 그제야 자판기에 관리자 연락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흘 동안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 번호는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자판기가 누군가의 소유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가 공중전화로 갔다. 동전을 넣는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병원에 있는 자판기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제가 여기 입원한 아이 엄마인데요.”
어머니는 번호를 적은 수첩을 편 채 말했다. 처음 반환된 돈, 알고도 가져온 일, 동전을 넣은 뒤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까지 전했다.
“저희 아이가 발로 차기도 했습니다. 오셔서 봐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현의 눈에 눈물이 찼다. 정현은 동생에게 울지 말라고 하려다 그만뒀다.
어머니는 상대의 말을 듣고 시계를 봤다.
“네. 그 시간에 저희도 기다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어머니가 돌아왔다.
“저녁에 오신대.”
“오늘?”
정현이 물었다.
“응. 너희도 만나서 말씀드려야지.”
강현이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어머니는 자판기에 붙일 ‘사용 중지’ 안내를 부탁하러 간호사실 쪽으로 갔다. 강현은 뒤따르려다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정현은 가방을 동생에게 주지 않았다.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지퍼를 끝까지 열었다.
강현이 자판기 쪽을 봤다. 꺼지지 않은 불 아래에 율무차 그림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와서 한 번 건드리면 또 백 원이 나올 것 같았다.
“형.”
“왜.”
“우리가 저 자판기에서 돈 훔친 거야?”
정현은 뭔가 대답하려다가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감옥 가?”
“아니, 잘못했다고 빌어 보자.”
강현이 불안한 눈빛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