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은 '공'으로 물 베기

애증(愛憎)의 파워볼

by혜준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부부간의 다툼이 일시적이며, 관계가 금세 원래대로 회복된다는 뜻이 담긴 표현이라고 알고 있다.

이 세상의 부부들은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계실는지......

이 세상 부부의 수만큼 다양한 부부 관계가 존재하겠지만, 나도 이 말에는 조금 동의를 하는 편이다.


연애와 결혼을 모두 합쳐 지금까지 25여 년 동안, 우린 싸워도 정말 하루를 넘겨 본 적이 없다.

그건 아마도 남편이 싸우고 나서 5분도 안 됐는데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거나(어쩔 땐 이게 더 화가 난다), 내가 완전 무시를 해도 아무런 타격감도 없이 느물거리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처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맘을 모질게 먹다가도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깜빡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우리가 엄청 사이 좋다거나 인성이 어질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우리가 싸움을 말보다는 공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둘이서 아침마다 YMCA 실내 풀장에 가서 수영을 했다.

이사한 뒤 수영장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가까운 공원의 테니스 코트를 발견했다.

남편은 라켓을 잡아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테니스 스쿨은 커녕 무작정 공원으로 가서 회원 가입을 했다.

그리고는 회원 할아버지들에게 무료 코칭을 받으며 '야생 테니스'를 습득한 무모한 아저씨이다.


처음엔 남편 혼자 코트에 나갔다.

난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했고 출산이 이어져 코트에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챙기는 동안 남편은 꾸준히 테니스에 정진(精進)했다.

얄미울 정도로......

아이들이 유치원에 등원하게 되면서, 나도 시간에 조금 여유가 생겨 코트에 나가게 되었다.

난 대학 때 스쿼시를 배운 적이 있다.

물론 종목은 전혀 다르지만 공과 라켓에 대한 거부감이나 공포는 없었다.

그리고 남편의 사부님들이 남편보다 나를 더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덕분에, 난 너무나 재미나게 테니스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내가 테니스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코트의 이쪽에서 저쪽의 남편을 향해 내 분노가 담긴 파워볼로 정당하게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난 라켓에 공이 맞아 쭉 뻗는 그 느낌이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내 속에 있는 울분이나 스트레스, 걱정도 모두 공에 실려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나보다 그리 잘 치는 것 같지도 않구먼......

둘이서 랠리를 하다 보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라, 네 폼이 이러니까 저렇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느냐, 운동 신경이 없다, 발이 느리다, 발을 통통통 구르며 준비를 하고 있어라, 무릎을 더 굽혀라, 어깨를 넣어라...... 정말 주문이 너무 많다.

그게 다 되면 내가 버얼써 윔블던에 갔지 이 동네 코트에서 당신에게 배우리?


제일 싫은 것은, 하고 있던 랠리를 멈추고 자기에게 오라고 해서 자기 폼을 보라며 시범을 보일 때이다.

난 테니스를 잘은 못 쳐도 보는 눈은 있다.

어딜 봐도 모범이 안 되는 당신의 폼을 보고 따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난 신뢰할 수 없는 코칭을 받을 시간에 공을 팡팡 날리고 싶단 말이다.


코트에서 싸울 수는 없고 묵묵히 듣는 척을 하다가 랠리가 시작되면 난 분노의 파워볼을 날린다.

내 공을 못 받고 머쓱해진 남편은 "힘은 세네......"하고 중얼거리고, 코트 밖에서 보고 있던 사부님들이 껄껄대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 재미가 쏠쏠해서 테니스를 쳤다.

물론 남편의 코칭을 무시한 탓에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고, 대신 기미와 주근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실내 테니스 스쿨에 등록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코치가 상냥하고 친절하게 딱 치기 좋은 장소에 던져 주는 볼은 뻥뻥 날려도 그 상쾌함이 달랐다.

난 싫증이 나서 금방 그만두었다.


그 후에는 방학을 이용해 라이트가 있는 코트를 예약해서 밤에 한두 시간 남편과 같이 치게 되었다.

별 것 아닌 걸로 투닥거렸다가도 예약을 해 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밤에 둘이 코트에 나가서 랠리를 한다.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공을 엉뚱한 곳에 보내서 "아! 미안"이라고 하다 보면 그 사과가 이 사과인지 저 사과인지 애매모호하지만 아무튼 서로 '심심한 사과'를 하게 된다.


운동으로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는 것도 있고, 달빛이 교교한 밤이라는 것도 있고, 물통의 물을 서로 입을 맞대고 나눠 마시는 것도 있고, 잠시나마 아이들과 떨어져 조용히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있는 탓일까.

여러 요인들이 복합되어 투닥투닥하던 모난 감정들이 차분히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가끔 남편은 나에게 서브를 더 연습해서 자기와 함께 복식경기에 나가자고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부부로 출전하는 사람도 많다며.

난 절대 절대 싫다.

승부욕이 장난 아닌 사람이니 시합 중에 조언이랍시고 얼마나 잔소리를 해댈 것인가.

게다가 자기 합리화가 능숙한 사람이니 같은 편이 되면 패인(敗因)을 모두 나에게 돌릴 게 틀림없다.

이 정도로 신뢰가 없는 남편과 넌 참 잘도 살고 있구나......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남편과 복식으로 시합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나의 테니스의 목적이 남편과 사이좋게 코트에 나란히 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며 저 건너편의 그가 내 애증(愛憎)의 파워볼을 받아주길 바라는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