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죄송해요 ー 저도 제 머리 잘 못 깎겠어요
아들의 한글 깨치기 프로젝트는 오늘로 보름 째다.
첫째 주는
기본 모음과 자음을 외워 한글을 읽는 연습을 했다.
모음은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자음 ㄱ,ㄷ,ㅈ은 이상하리만치 아들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물론
자기 전에 겨우 30분 정도 하니까
그러려니 하다가도,
너무나 느릿느릿 읽는 속도와
10초 전에 했는데 자꾸 똑같은 것을 틀리는 꼴을 보면
'바보 아냐?' 하는 답답함에 짜증이 난다.
게다가 집중하지 않고
건성건성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내 안에서 짜증보다
뭔가 다른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한글 공부보다
아들의 평상시의 학습태도와 생활태도에 대한 불안이
확 올라오면서
참으려고 해도
머릿속이 아니라 뱃속에서부터
불안에 버무려진 설교가 올라온다.
참으려고 해도 눌러지지 않는
설교 덩어리가.
둘째 주에는
예상하지도 못한 조력자 덕분에
三日坊主([mikkabouzu] 작심삼일)인 나와 아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한글 공부를 이어 오고 있다.
내 글을 읽어 주신 사랑스러운 온라인카지노 작가님이
아들을 위해 너무나 멋진 앱을 만들어 주셔서
게임을 하듯이 공부를 하고 있다.
(문님 정말 감사합니다!!!)
레벨에 따라
단어와 함께 문장 공부도 할 수 있고,
퀴즈 형식이라서 아들은 싫증도 내지 않고 재미있어한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편견, 갈등, 감정등 추상적인 개념의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일본어가 도움이 된다.
한자의 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아들은 한자어의 한글을 읽으면서 두리뭉실 의미를 예상한다.
한글을 읽는 것은 느려도
읽고 나서 답을 맞힐 수 있으니 자신감이 생기는가 보다.
이렇게 일단
보름 동안 나는
아들과 매일 짧은 시간이지만 한글 공부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그 보름 동안 나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의 의미를 몇 번이나 되뇌었던가.
그러면서 왜 못 깎는지에 대한 대답도,
그리고 어떻게 하면 깎을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게 단순히 기술적 문제일까.
단순히 뒤통수나 정수리가 눈에 보이지 않고,
각도가 나오지 않아 혼자서 깔끔하게 깎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일까.
깎으려고 한다면 충분히 혼자서도 깎을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건
심리적, 정서적 측면에 더 원인이 있지 않을까.
자라나는 머리를 매번 깎으면서 느껴야하는
그 심적 고뇌와 고통이 힘든 건 아닐까 싶다.
나도 아들과 한글 공부를 하면서
그저 가르쳐 주고 같이 공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힘들었던 것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아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난히 습득이 늦은 아이를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회피하고 싶었을지도.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까
'推'라는 한자의 쓰는 순서를 두고
한 시간 넘게 실랑이를 한 적이 있다.
아무리 반복해도 자꾸 틀리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점점 무서워졌다.
이 아이는 정상이 아닌 건 아닐까.
혹시 학습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나를
또 하나의 내가 저 멀리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모습에 점점 더 긴장으로 굳어지는 아들을 보면서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학대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
나는 다시 내 머리를 깎는 각오로
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을 고치거나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들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어떤 상황이든 아들의 현재를 직시하고
인정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어떤 점을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지.
아직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난 내가 20년 넘게 해 온 익숙한 이 일을 통해
비로소 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이 어떤 부분에서 무난히 넘어가고
또 어떤 부분에서 자꾸만 넘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직 스스로 내 머리를 능숙하게 깎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미리 걱정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서두르지도 말고
생각대로 잘되지 않아도
한번 피식 웃고 다시 시작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쯤에서야 나는
내가 깎아서 가볍고 짧아진 내 머리를 긁적이며
어설프게나마
아들과 한국말로 떠들어 댈 수 있지 않을까.
한글 프로젝트 스타트에 관한 글은,
https://fishingproductfr.com/@2c4c8b3b81cb435/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