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해 볼까?

엄마와 아들의 한글 프로젝트

by혜준

오늘부터 내 여름 방학 시작이다.

성적 처리도 다 끝났고 아이들의 학교 관련 일도 어지간히 정리가 되었다.

이젠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뿐이고 나머지 시간은 일단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을 내 것으로만 쓸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의문이지만.

뭐 좀 하려고 하면

"준아~"

"엄마~"

"마마(ママ[mama] 엄마)~"

쉴 새 없이 불러대는 통에 참 난감하다.

집중 좀 하자고!!!

그나마 온라인카지노를 하고 있으면 눈치와 염치들은 있으므로 세 번 부를 걸 한 번 부르는 배려는 해 준다.


온라인카지노도 익숙해진다는 개념이 통용되려나?

예전엔 하루 종일 매달려 있어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젠 마냥 들러붙어 앉아 있는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 체득되어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 내 루틴의 하나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하고 망설이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건 아들의 한글 깨치기.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기도 하고 더 늦어지면 입시(入試)다 뭐다 또 기회를 놓칠 것 같다.

주위에서는 왜 진작 안 가르쳤냐고 혼을 내시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학교 공부도 꼴찌인 녀석에게 한글까지?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인 것 같다.

할머니 집에서 3주 정도 구몬 선생님께 한글을 배운 적이 있다.

딸아이는 이때 잘 배워서 지금도 한글을 읽을 수 있는데, 아들은 어디로 휘발된 것인지 흔적도 없다.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중학교 입시가 있어서 천천히 한글을 배울 여유가 없었다.

학원 갔다 온 아이에게 한글 하자고 옆에 앉힐 만큼의 열성이 나에게는 없었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었던 한글 공부를 이번 여름 방학 때 해 볼까,

아들에게 물어보니 자기 한국말 잘한다고 하면서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한국의 걸쭉한 욕을 낄낄거리면서 해댄다.

등짝을 서너 대 맞고 나서야 알았다며

한글 좀 배워 볼까...... 한다.


사실 영어 단어도 안 외우는 녀석에게 내가 지금 한글을 하자는 게 맞을까 의심스럽긴 하지만,

혹시 나중에 군대에 가서 한글을 몰라 혼쭐이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불안과

어차피 공부도 안 하는데 이거라도 같이 하면서 노는 게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동영상을 보며 낄낄거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아들에게 제안을 해 봤다.

올봄까지만 해도 싫다고 펄쩍 뛰던 놈이 어째 순순히 받아들인다.

혹시 아주 미미한 성장?

이라고 미미한 희망을 가지고 시작을 해 보려고 한다.

엄마와 아들의 한글 프로젝트.


아들의 경우,

내가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말은 한국어로 하기도 하고, 우리 부부의 대화로 인해

일상 회화나 기본 어휘는 이해하고 있어서,

내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하면 분명히 지루해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지금부터 천천히 궁리를 해 보려 한다.

언젠가 아들이 내 바카라상 위에 있던 한글 단어 카드를 손에 들고

"코끼리"

"토끼"

"다람쥐"

라고 너무나 정확하게 격음과 경음(된소리)과 받침까지 완벽히 읽기에 깜짝 놀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마'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내밀면서

"이거 뭐라고 읽어?"하고 물었더니

"가~바~(カバ [kaba] 하마)"란다.

우뛰...... 이 녀석!!

한글을 읽은 게 아니었다.

그냥 카드의 그림을 보고 멀쩡하게 말한 거였다.

이런......

나 혼자 언어 천재를 발견했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기본 어휘를 안다는 건

앞으로 문자와 소리를 일치시키며 배우기에는 좋은 조건이므로 그리 나쁘지 않다.......

라고 나 스스로를 고무(鼓舞)시키며 시작을 해 볼까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난 과연 교실에서처럼 평정심을 가지고 아들을 대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로다.

내 인내심과 이성의 단련에도 좋은 기회라 생각해,

이번 여름, 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제발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하마 두 마리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