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臭い 여자

부담과 집착의 경계에서

by혜준

남편과 연애할 때 크게 다툰 적이 한 번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연애를 시작하기 전인가 보다.

남편은 나보다 한참 선배로 처음엔 이성으로 보이지도 생각되지도 않았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잠시 나와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을 때였다.

보통은 다른 유학생들도 같이 차도 마시고 잡담도 하는데 그날은 마침 나와 남편 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남편이 내 생일을 묻는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내 생일 하루인가 이틀 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괜히 남편이 신경 쓸까 봐 생일을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건 누가 물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집요하게 계속 묻는다. 처음에는 웃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벼운 대화였는데, 점점 남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 어조가 마치 자백을 받으려고 날 추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거 뭐지? 난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이 남자는 내 생일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날 꺾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입을 더더욱 앙 다물고 끝까지 내 생일을 사수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갑자기 자기가 빌려준 바카라을 다 가져오라는 것이 아닌가!!!

난 그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기숙사로 가서 남편이 빌려 준 바카라을 가져와 몽땅 돌려주었다.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다시는 안 볼 각오를 했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는데 아마 어찌어찌 화해를 했는지 지금은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아까 이 글을 쓰기 전에 남편에게 그때 왜 내 생일을 그렇게 기를 쓰고 알려고 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빨리도 묻는다...).

그랬더니 자기는 이미 호감이 생겨 서로 알아가며 마음을 주고 싶어서 생일을 물어봤는데,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건 자기를 친밀한 관계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차가운 태도로밖에 해석이 안 돼서 그랬다는 것이다.(그래도 바로 바카라 돌려 달라는 건 좀 밴댕이...)

난 이제껏 내 고집을 꺾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미안했고 오해가 풀려서 기뻤다.

내가 그 자리에서 솔직히 "실은 제 생일이 내일이라서 선배님한테 부담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라고 했다면 얼마나 다정하고 싹싹한 후배였을까.


남편과 만난 지 8년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난 지도교수에게 내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선생님께 부담을 준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어차피 한국에서 하니 괜히 알리면 선생님이 불편하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혼식을 마치고 1년인가 지나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결혼했음을 알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첫 한마디가

"水臭い*(みずくさい [mizukusai] 맛이 싱겁다, 섭섭하다, 정이 없다)"였다.

선생님은 날 친근한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계셨는데, 내가 한 행동은 차갑고 거리를 두는 행동이라 섭섭하셨던 것이다. 아마 남편이 나에게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일까.

선생님은 남편처럼 밴댕이는 아니었으므로 변함없이 나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지만, 그 후로도 아마 나는 선생님께 水臭い 행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며칠 전 딸아이 친구 엄마랑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외동딸과 떨어져 살기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딸이 결혼을 해도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난 딱 질색이다(이래 놓고 같은 집에 살자고 애걸복걸할 수도 있겠으나...).

노후 대바카라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늙은 부모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

엄마가 갑자기 생각나거나 의지하고 싶을 때 편안한 장소로서 날 찾아와 주는 것은 대환영이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의지하거나 기대고 싶지는 않다.

가만히 내 맘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약 십여 년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난 아이들 존재에 대한 따뜻한 애정보다는 아이들의 성장과 자립에 대한 바카라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들이 언젠가 툭 던진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아빠 같아"

아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바카라임도 사랑의 일부이나,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그 말은 아프기도 했지만, 내가 애정을 어떻게 표현하는 사람인지 돌아보게 했다.

난 내 마음속 어딘가에 상대에 대한 내 애정이 "집착"이 되지 않도록 항상 브레이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누군가의 순수한 호의에 대해선 내가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거리를 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집착"이 되면 어쩌지? 거리를 두고 전전긍긍한다.

우리 엄마 말대로 내가 정이 없어서 그런가?

내가 일본에 오래 살아서 깍쟁이 같다는 일본 사람이 다 된 건가?

하지만 나는 일본인 지도교수에게조차 "水臭い" 여자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정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초코파이 봉지에 새겨진 "情"이라는 글자만 머릿속에 뱅글뱅글 맴돈다.

이런 내가 요즘 "정"이란 말에 꽂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정문화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관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정문화는 관계에 우치(内, うち) 소토(外, そと)라는 개념을 두고, 너와 나 관계의 경계를 지키는 배려를 중요시한다. 여기서 우치란 미우치(身内)라고 해서 대개는 자신의 가족이나 아주 친한 사이를, 소토는 그 외의 타자를 말한다.

그래서 우리 기준으로 보면 깍쟁이, 차갑게 느껴지는 일본인들에게도 우치는 한국과 같이 따뜻하고 끈적한 감정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나처럼 가족이나 친한 사람에게까지 거리를 두는 경우를 두고 이들은 "水臭い"라고 표현한다.

일본인보다 더 정이 없는 나는....도대체 뭐지?


전에는 눈 닫고 귀 닫고 입 닫고 안 받고 안 주며 사는 게 제일 등 따시고 배부르고 속 편하고 현명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익명이긴 하나, 온라인카지노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입을 열고 보니, 어느새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림을 느낀다.

천천히, 좁지만 새로운 관계라는 게 맺어진다.

온라인 공간의 인간관계 따위 "흥!"하고 코웃음 치던 내가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박정하고 조심성 많은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지만,

글과 함께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읽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이 열림을 느낀다.

그리고 내 안에 말라 있었거나 숨어 있었던 정이라는 녀석이 그 살짝 열린 마음의 문을 향해 한 발짝 발을 내딛고 있음을 느낀다.

"부담"도 "집착"도 훌훌 털어 버린 "정"이라는 녀석이 당신에게 살짝 뛰어가고 싶어함을 느낀다.




*水臭い : "물비린내가 난다"는 뜻으로 친한 사이에 너무 벽을 치며 사양할 때 쓰는 이 말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이미 깊은 정이 고여 있음을 증명한다. 너와 나 사이에 물이 너무 섞여 마음의 농도가 밍밍해졌다는 섭섭함의 표현. "우린 이미 정을 나눈 사이니, 그만 거리를 두고 내 안으로 조금 더 들어와도 좋다"는, 일본인 특유의 가장 조심스럽고도 다정한 손내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