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26.(일)
'아는’사람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있다.
제3자가 물었을때
그냥 '아는'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보통
분류(categorize)하기 애매한 사람을 뜻할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모호함의 경계는 개인마다 스스로 정의하는 범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람이 제대로 '알 수'있는 범위는 150명이라고 한다.
150명도 너무 많은거 아닌가? 적은거 아닌가? 다양한 해석이 있을수 있겠지만,
나는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도 온전히 제대로 알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잡하고, 총체적이라 양파처럼 여러겹이 켜켜이 쌓여있다.
슬롯적 페르조나라고 하는 겉모습 말고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의지, 정성이 필요하다.
예전에 회사에선 너무 최악으로 엉망인 상사가 가족들에게는 끔찍하게 잘하는 경우를 봤다.
그때 생각했다. 저 집에서는 지금 저사람의 실체를 알까? 과연 뭐가 좋은 것일까?
집과 회사에서의 모습이 꼭 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집에서 봤다고, 회사의 모습까지 다 알것이라고 착각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거울이라, 인간관계는 모두 상대적이다.
그런데 반대로
회사에서는 엄청 존경받고 모범적인 상사가 집에서는 심부름 꾼 처럼 취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현명하고 일도 잘하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집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민원까지 해결하고 있었다.
근데도 전혀 불만없이 잘 살고 있는것 같았다.
사실 이마져도 단면만을 보았으니 그 속내를 알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연은 보통 계속 이어지지 않고 잠시 스쳤다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그 스친 기억의 잔상으로 사람을 기억하게된다.
기억을 하면 다행이지.. 보통은 기억도 잘 못한다.
얼마전에 내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쾌활한 '호'인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내가 직원들하고 '떡'을 돌려서 다같이 나눠 먹었다고 한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그 행동은 내가 했을 법한 행동이라 넘어갔다.
이처럼 내 기억속에 사라지는 무언가가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그리고 나는 몇명이나 기억할까?
하지만 오히려 그 숫자보다 중요한것은
잊어야 할 사람은 빨리빨리 잊고
잊지말아야 할 사람을 잊지 않는거 아닌가?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