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a Reader, Tomorrow a Leader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에머슨은 미국 지성사의 아버지이자 '미국 정신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ㅇ <미국의 학자(The American Scholar, 1837)>
에머슨이 가장 먼저 유명해진 계기는 1837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학문과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유럽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는데
에머슨은 이 연설에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유럽의 궁정 뮤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비판하며,
과거의 바카라이나 유럽의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미국인 자신의 눈으로 자연과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사유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이 연설을 가리켜 "우리의 지적 독립 선언문"이라며 극찬했고,
미국 문학과 철학은 이 연설을 기점으로 비로소 독자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ㅇ <자기 신뢰, (Self-Reliance, 1841)>
에머슨의 이름과 사실상 동의어로 쓰이는 가장 유명한 에세이이자 사상으로
그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 슬롯적 관습, 기존의 제도에 순응(Conformity)하는 것을 영혼의 타락으로 보았다.
대신, 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직관과 확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급진적 개인주의를 역설했다.
"자신을 믿어라. 모든 가슴은 그 철현에 맞춰 진동한다
(Trust thyself: every heart vibrates to that iron string.)",
"위대해진다는 것은 오해받는다는 것이다(To be great is to be misunderstood)"라는
유명한 명언들이 바로 이 텍스트에서 탄생했다.
ㅇ 초월주의의 구심점이자 '위대한 멘토'
초월주의 운동을 창시하고 이끈 실질적인 구심점으로 그는 단순히 개인의 사유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강연 수익과 자산을 털어 당대의 젊은 지성들을 발굴하고 후원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을 수 있도록 자신의 땅을 무상으로 빌려준 사람이 에머슨이었고,
마가렛 풀러의 지적 역량을 알아보고 <다이얼>의 편집장을 맡긴 것도 그였다.
또한 무명이었던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극찬하여
그를 미국 대표 시인으로 만든 것도 에머슨의 안목이었다.
ㅇ 니체와 실용주의에 미친 영향
에머슨의 철학은 미국을 넘어 세계 사상사에도 깊은 충격을 주었는데
특히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는
니체는 1862년(18세) 처음 에머슨의 에세이를 접한 후, 평생 동안 그의 바카라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니체가 소장했던 에머슨의 독일어 번역본(Versuche)에는 무려 수백 페이지에 걸쳐 니체의 밑줄과 빽빽한 메모가 남아 있다.
니체의 핵심 철학인 '초인(Übermensch)' 개념이나,
전통적 도덕을 파괴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라는 철학적 명제는
에머슨의 '자기 신뢰' 사상에 빚진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로 이어지는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 역시 에머슨의 사상을 그 토대로 삼고 있다.
에머슨은 낡은 제도와 유럽의 권위에 짓눌려 있던 미국인들에게
"당신 내면의 신성을 믿고, 당신 스스로 우주의 주인이 되라"는
철학적 무기를 쥐여준 사상가로 역사에 남아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에머슨은 미국 지성사의 아버지이자 '미국 정신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ㅇ <미국의 학자(The American Scholar, 1837)>
에머슨이 가장 먼저 유명해진 계기는 1837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학문과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유럽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는데
에머슨은 이 연설에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유럽의 궁정 뮤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비판하며,
과거의 바카라이나 유럽의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미국인 자신의 눈으로 자연과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사유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이 연설을 가리켜 "우리의 지적 독립 선언문"이라며 극찬했고,
미국 문학과 철학은 이 연설을 기점으로 비로소 독자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ㅇ <자기 신뢰, (Self-Reliance, 1841)>
에머슨의 이름과 사실상 동의어로 쓰이는 가장 유명한 에세이이자 사상으로
그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 슬롯적 관습, 기존의 제도에 순응(Conformity)하는 것을 영혼의 타락으로 보았다.
대신, 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직관과 확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급진적 개인주의를 역설했다.
"자신을 믿어라. 모든 가슴은 그 철현에 맞춰 진동한다
(Trust thyself: every heart vibrates to that iron string.)",
"위대해진다는 것은 오해받는다는 것이다(To be great is to be misunderstood)"라는
유명한 명언들이 바로 이 텍스트에서 탄생했다.
ㅇ 초월주의의 구심점이자 '위대한 멘토'
초월주의 운동을 창시하고 이끈 실질적인 구심점으로 그는 단순히 개인의 사유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강연 수익과 자산을 털어 당대의 젊은 지성들을 발굴하고 후원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을 수 있도록 자신의 땅을 무상으로 빌려준 사람이 에머슨이었고,
마가렛 풀러의 지적 역량을 알아보고 <다이얼>의 편집장을 맡긴 것도 그였다.
또한 무명이었던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극찬하여
그를 미국 대표 시인으로 만든 것도 에머슨의 안목이었다.
ㅇ 니체와 실용주의에 미친 영향
에머슨의 철학은 미국을 넘어 세계 사상사에도 깊은 충격을 주었는데
특히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는
니체는 1862년(18세) 처음 에머슨의 에세이를 접한 후, 평생 동안 그의 바카라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니체가 소장했던 에머슨의 독일어 번역본(Versuche)에는 무려 수백 페이지에 걸쳐 니체의 밑줄과 빽빽한 메모가 남아 있다.
니체의 핵심 철학인 '초인(Übermensch)' 개념이나,
전통적 도덕을 파괴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라는 철학적 명제는
에머슨의 '자기 신뢰' 사상에 빚진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로 이어지는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 역시 에머슨의 사상을 그 토대로 삼고 있다.
에머슨은 낡은 제도와 유럽의 권위에 짓눌려 있던 미국인들에게 "당신 내면의 신성을 믿고, 당신 스스로 우주의 주인이 되라"는 철학적 무기를 쥐여준 사상가로 역사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