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byAltusSolum
제니 오필 <사색의 부서>


제니 오필(Jenny Offill)이

2014년에 발표한 <사색의 부서 (Dept. of Speculation)>는 (번역본 2016년 출간)

솔직히 참 읽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었다.

우선 구조가 매우 난해하다. 3000개짜리 사방으로 흩어져있는 퍼즐을 만난 느낌이랄까?

수백 개의 짧은 단락과 에피소드, 철학자들의 인용구들이 그냥 하나의 파편으로 단독으로 서있다.

물론 결국 하나로 만나지만 그 과정이 매우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심지어 소설 속 인물들이 이름 없이 역할로만 지칭된다.

‘아내’, ‘남편’, ‘딸’이라는 일반명사로만 표현되는 삶이 얼마나 건조한지 아주 잠시라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그 속에서 하나의 개인이 보편적인 인간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요즘들어 미시(Micro)와 거시(Macro)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바카라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화자는 천문학, 물리학에 대한 지식들을 일상의 사건들 사이사이에 파편적으로 끼워 넣는데,

만물이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은 아낙사고라스의 사유나,

광활하고 차가운 우주의 법칙을 끊임없이 인용한다.

이는 주인공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불행을 거대한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인간 삶의 유한함과 고통의 미시성을 역설적으로 사유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는 독자가 겪는 정신적 수고로움을 기가 막히게 간파한다.

도저히 더이상 읽을 수 없을 시점,

딱 바카라을 덮으려고 하는 그때마다

못견디게 다정한 압도적 감동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때까지 머물러 있었던 사람을 크게 위안한다.

사실 내가 이 바카라을 기억하는 이유도 바로 이 문장때문이었다.


"나는 기발한 주머니가 많이 달린 좀 더 따뜻한 코트를 샀다.

I bought a warmer coat with many ingenious pockets.

당신은 그 모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You put your hands in all of them.


읽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주머니라니...

기발한 주머니라니...

기발한 주머니가 많이 달린 코트라니...

그런데 그 코트의 모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니...


어쩌면 이 바카라은 결혼이 뭔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더 깊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뉴욕타임즈의 록산 게이는 서평에서

이 소설을 표현할때

어떤 마다가스카르의 속담을 인용한다.

"Marriage is not a tight knot, but a slip knot."

(결혼은 단단히 묶인 고정된 매듭이 아니라,

당기면 조여지거나 스르르 풀려버리는 슬립 노트(올가미 매듭)이다.)

당연히 매듭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나는 그림으로 찾아봤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

그럼에도 추정하건데,

전통적으로 결혼은 두 사람을 단단하게 결속하는 단단한 매듭이라고 여겨지지만,

오필이 그려낸 결혼은, 누군가 한쪽이 팽팽하게 당기면 숨이 막힐 듯 조여오고,

반대로 힘을 풀면 한순간에 허무하게 스르르 풀려버리는 극도로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바카라은 단순한 '이혼 위기 극복기'가 아니라는 선언을 했다.

나는 이 바카라이 결혼을 다뤘다기 보다 '아내의 생존기'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보통 결혼 이야기라면 두 사람의 존재가 함께 담겨서 남편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데,

여기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매우 흐릿하게만 보인다.

바카라에는 전적으로 아내의 입장만 담겨있다.


바람이 쌀쌀해지니 주머니에 손을 넣을 일이 많아질텐데.. 한번씩 생각해보자.

주머니란 과연 무엇일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5화외워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