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행복 < 익숙한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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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AltusSolum

우리는 흔히 연애와 사랑의 목적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인간의 무의식이 작동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뇌는 행복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가장 익숙한 감정적 패턴(친숙함)'을 찾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랑이 냉담함, 조건부 인정, 혹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성이었다면,

이 사람의 뇌 구조에 입력된 사랑의 기본값은 '고통과 결핍'이 된다.

정서적으로 제한된 식사의 배급에만 길들여진 이들의 심리 구조는 매우 협소하고 경직되어 있어,

오히려 타인의 무관심이나 차가움에는 아주 능숙하고 편안하게 대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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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에게 사랑하는 상대가 조건 없고 폭발적인 사랑을 쏟아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은 풍성하고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와 같지만,

이들의 위장은 이 엄청난 영양분을 소화할 능력이 없다.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의 위장에 갑자기 진수성찬을 쏟아부은 것처럼 극심한 '심리적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이들은 낯선 친밀감을 축복이 아니라 극도로 이질적이고 기괴한 자극으로 인식하며,

자아가 함몰될 것 같은 본능적인 질식감과 공포를 느낀다.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이들이 실존적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관계를 스스로 사보타주(Sabotage, 의도적 파괴)한다는 사실이다.

상대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강박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언젠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수동적인 공포를 견디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이 관계를 망가뜨리고 도망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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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보통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관계가 가장 안정적이고 깊어지려 하는 바로 그 순간,

등 뒤에 숨겨두었던 '다이너마이트(Sticks of dynamite)'를 꺼내 들어 자신이 머무는 관계의 기둥을

스스로 폭파해 버린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무단으로 잠수를 타며, 일부러 엇나가는 행동으로 상대를 밀어낸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 과분한 사랑이 감당할 수 없이 벅차고 두려운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이 통제 불가능한 천국을 박살 내고 나서야, 이들은 비로소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익숙한 고립'으로 돌아가 통제권을 회복하고 기묘한 안도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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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인의 심리적 퇴행은 오늘날 현대 슬롯의 기이한 '관계 맺기' 방식과 맞물려 거대한 시대적 병리로 확장된다. 우리는 흔히 도망치는 이유를 두고 "아직 내게 딱 맞는 진짜 사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1959 - )은 저서 <에로스의 종말(Agonie des Eros)>에서 이 도피 현상의 근저에 깔린 진실을 꿰뚫는다. 그는 현대 슬롯가 진정한 타자(The Other)를 견디지 못하는 ‘동일자의 지옥(In der Hölle des Gleichen)’으로 전락했다고 선언한다.


사랑, 즉 에로스란 본질적으로 내 통제권을 벗어난 이질적인 타자와의 강렬한 충돌이며,

필연적으로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 매몰된 사람들은 이 끈적하고 통제 불가능한 '타자'를 거세해 버렸다.

이들의 관계 맺기는 마치 언제든 구독을 해지할 수 있는 'OTT 서비스'와 같아졌다.

타인의 온기가 주는 달콤함은 원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에게 폐를 끼치거나 관계가 무거워질 기미가 보이면 "부담스럽다", "유해한(Toxic) 사람"이라는 세련된 심리학적 방어기제를 내세워 '구독 취소' 버튼을 누른다.

철저히 슈가코팅(Sugar-coating)된 무해한 관계,

즉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거울 속의 나만을 소비하려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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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달아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온전히 '사랑받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내 밑바닥을 내어주고 바카라임의 무게를 나누어 지는 진짜 사랑 앞에서는

번번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면서,

나를 외롭게 방치하는 차가운 관계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이 소름 끼치는 강박적 중독.

이 기막힌 아이러니 앞에서,

이제 남 탓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가장 실존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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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익숙한 불행'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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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people sabotage relationships (왜 사람들은 왜 관계를 스스로 망쳐버리는가?)>

https://youtube.com/shorts/OVcZ1vyZgpY?si=nFMZTIHAEKA914TE​

"The classic sentence that an avoidantly attached person will say to their partner after a few beautiful weeks, a few mini breaks, a few lovely times, they'll go: 'This is feeling a bit too intense.'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몇 번의 아름다운 주말, 몇 번의 짧은 여행, 몇 번의 사랑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 파트너에게 던지는 아주 고전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관계가 조금 너무 무거워(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아.'

And then they will withdraw.

그러고는 뒤로 물러납니다.

They'll pull away from a relationship because it's getting too intense.

관계가 너무 강렬해지기 때문에 관계에서 발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And really what they mean is, 'I'm so afraid of love, and the way that I deal with my fear of love is to pull away.'

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입니다. '나는 사랑이 너무나 두렵고, 이 두려움을 다루는 나의 유일한 방식은 도망치는 것뿐이야.'

It's not that the avoidantly attached person doesn't want love.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사랑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They want love; they're just terrified of it.

그들도 사랑을 간절히 원합니다. 단지 사랑을 극도로 두려워할 뿐입니다.

Why are they terrified of it? 왜 두려워할까요?

Because it didn't go well for them in childhood.

어린 시절에 겪은 사랑이 그들에게 좋은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Because love is a threat. 그들에게 사랑은 곧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If you have grown up in an environment where love was not possible, where relationships between caregivers and children were not safe, you will have defended yourself against the risks of disappointment.

만약 당신이 사랑이 불가능했던 환경, 양육자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안전하지 않았던 환경에서 자랐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실망'이라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 왔을 것입니다.

You will have insulated yourself.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켰겠죠.

And then when love comes your way in adulthood, what you will do against your knowledge, against your conscious knowledge, is make sure that love does not succeed.

그러다 성인이 되어 당신에게 진짜 사랑이 찾아오면,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인 인지와는 정반대로 그 사랑이 결코 성공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You will sabotage your own chances of a successful relationship.

성공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를 스스로 사보타주(파괴)하는 것입니다.

When it really becomes clear that love may work, that's when the traumatized attachment lover gets their sticks of dynamite out and starts to blow the foundations of the house up so that they can return to the suffering that feels more familiar.

'이 사랑이 정말로 잘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때, 바로 그때 트라우마를 가진 연인은 다이너마이트를 꺼내 들어 자신이 머무는 집의 기초를 폭파해 버립니다. '자신에게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고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What you need to understand is that in love we don't look for what will make us happy.

우리가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사랑에 있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bsolutely not.

절대 아닙니다.

We look for what feels familiar.

우리는 '익숙한 것'을 찾습니다.

For many of us, what is most familiar is a sense of not being loved properly, a sense of not being sure where we stand, a sense that someone may threaten us, a sense that someone may abandon us.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감각이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내 위치가 어디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 누군가 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리고 누군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입니다. That is our true home. 그것이 우리의 진짜 마음의 고향(true home)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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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https://youtu.be/kRMcimuuk0Q?si=c1004thtVhYRUh7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