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으로 전해지는 이해, 우리만의 베이스캠프
옆 대리점에 오누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택배를 시작하겠다며 새로 들어왔다.
어느 날 누나가 무거운 상자를 들다가 허리를 다쳐 바닥에 주저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택배 초기 일 년간 허리와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팠던 쓰린 기억이 서늘하게 되살아났다.
택배는 결코 낭만적인 육체노동이 아니다. 매 순간 관절의 비명과 부상의 위협을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척박한 생존의 현장이다.
그 거친 길 위로, 스물네 살 막내아들이 들어섰다. 아들이 힘겨운 택배현장에서 부모의 짐을 덜어주겠다며 스스로 구입한 낡은 중고 스타렉스를 끌고 나타났다.
비에 젖은 무거운 상자를 부모 대신 하나라도 더 짊어지려는 착하고 앳된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대견함과 측은함이 우리의 가슴팍 하나 가득 뒤섞인다.
과거의 나는 아이들에게 살갑고 자상한 아빠가 아니었다. 늘 지엄한 훈장 같은 비판자였고, 경쟁과 과시로 일그러진 잣대를 들이밀던 몹쓸 징벌자였다.
나의 훈육은 자식을 위한 것이라 포장했지만 실은 부모의 알량한 권위와 평판을 지키기 위한 이기심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바카라이 든다.
수줍음 많고 섬세한 튤립 같은 아이에게, 세상이 환호하는 장미꽃이 되라고 강요하며 가둔 장미정원에서 이 아이는 가시에 그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던가.
이 땀 냄새가 진동하는 택배현장에서 나는 무지한 아비의 권위를 내려놓고 어린 아들과 동일 선상에 나란히 서는 법을 하나씩 새롭게 배워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아들과 함께 택배를 하며, 수직적인 훈육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수평적 동료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들은 자신이 온전히 인정받고 싶어 하던 힙합 음악에 열중하느라, 택배 일을 도울 때를 제외하고는 늘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수십 곡의 비트를 찍어내며 비상하는 꿈을 꾸었지만, 세상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아들은 기꺼이 스스로를 좁은 방 안에 음악과 함께 가두었다.
꽉 막힌 현실 속에서 가슴속 응어리진 울분을 생소한 언어와 음률로 토해내며 힘겨운 순간들을 견뎌냈을 아들의 고독을, 나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힙합을 슬럼가의 불량한 소음쯤으로 치부하며 당장 끄라고 신경질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택배차 짐칸에 그득하게 쌓인 택배상자들 앞에서 나와 아내가 헐떡일 때, 곁으로 다가와 묵묵히 택배상자를 나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지닌 세상의 기준이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되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잣대나 명문대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랴.
무거운 짐 앞에 휘어진 부모의 굽은 등을 펴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는 이토록 순수하고 단단한 영혼 앞에서,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방식으로 살라고 강요하며 아들의 대견한 그 등을 이리저리 떠밀었던 지난 무지한 부모의 내 모습이 참 많이 부끄러워졌다.
"세상에서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어."
밤늦게 음악을 만들던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 너는 너만의 예술을 해야 한다고, 훌륭한 뮤지션의 길을 가라고 조심스레 건넨 내 말에 아들은 가만히 나를 껴안으며 말했다.
밤늦도록 식탁에 앉아 투박한 글을 쓰는 나와, 좁은 방에서 헤드셋을 끼고 비트를 찍는 아들.
어느새,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서 서로의 아픔과 꿈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유일한 팬이자 든든한 동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배송을 했다는 전화에 아들과 단 둘이 다시 배송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친 적막이 감돌던 낡은 은색 스타렉스 안에서 아들이 불쑥 자신의 첫 음원이 등록되었다며 쭈뼛거리며 스마트폰을 오디오에 연결했다.
이내 차량의 볼륨이 터질 듯 최대한으로 키워지고, 낡은 스피커를 찢을 듯한 강렬한 힙합 비트가 좁은 차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당장 볼륨을 줄이는 대신, 운전대를 꽉 쥐고 비트에 맞춰 신나게 웨이브를 타며 노래 부르는 아들의 희열과 열정으로 들끓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낯선 음악과 거친 리듬에 맞춰 아들과 함께 나를 내맡겼다.
'부모님 밖에 없어.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어쿠스틱을 좋아하던 내 귀에도, 강렬한 비트 위로 흐르는 아들의 낯선 싱잉랩이 참 좋아졌다.
가사 속에 가족을 향한 앳되고 순수한 아들의 진심이 뚝뚝 묻어있음을 이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아들이 만든 음악을 가만히 감상하던 내 등줄기로, 낡은 조수석 시트를 뚫고 묵직한 베이스의 진동이 느껴진다.
그것은 좁은 방에서 아들이 남몰래 삼켰을 눈물이자, 가족을 지키겠다는 순수한 아들의 심장 박동소리였다.
나는 온몸을 울리는 그 벅찬 진동을 묵묵히 느끼는 동안 깊은 감동과 함께 그동안 내가 아들에게 무슨 잘못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먹고살기 위해 우리는 거친 소음과 먼지가 날리는 택배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들의 음악과 나의 글은 돈과 무관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눈부신 이유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가족을 세상 그 어떤 비바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작고 단단한 베이스캠프로 짓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말하기도 하고, 때론 깊은 침묵을 지키기도 하면서 서로를 향한 공동의 피로를 그렇게 기꺼이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