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이번 역은 타인의 삶입니다 27화.

#이번 역은 신도림ㅡ마지막 신호역입니다.

byonharu


소희의 아침이 달라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가을 하늘이 그녀를 깨웠고,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보다 더 일찍 일어나 폰을 찾았다.

더듬거리는 손으로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열자,

서준이 보낸 아침 인사가 도착해 있었다.

[잘 잤어요?]

소희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숨기지 않고 답장을 적어 내렸다.

[네 잘 잤어요.. 잘 잤어요…?]

[아뇨.. 저는 어제 생각하다가 늦게 잤어요.]

[무슨 생각이요?]

[아.. 아니.. 아무것도...]

문자 속 머뭇거림과 수줍음이 소희의 심장을 아침부터 뛰게 했다.

아침 수업 가는 길.

소희는 늘 그렇듯 지하철 안쪽에 서서 에어팟을 꽂았다.

오늘은 서준과 강의 시간이 달라서 오랜만에 혼자 봉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

이어폰 너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 서류 봉투를 꽉 쥔 채 중요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소희는 타인의 삶에 들어가지 않고도, 이제는 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 도서관에 들렀다.

빈 노트를 펼치고 그동안의 체험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강진우, 서아영, 현우 엄마, 박성우, 정숙 여사, 혜미, 역무원, 승범, 외국인커플,
그들의 체험을 떠올리며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그리고..

이름이 없는 사람은 그냥 자리를 비워 뒀다.


어쨌든 나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주었던 체험이기에..

그 배움마저도 빼놓지 않으려 했다.

이어폰 낀 채 혼자 콘서트를 즐기던 사람도 있었다.

그냥 빈칸에 '콘서트남'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딱 한 사람만은 적지 않았다.

서준이 자신을 향해 품었던 그 두근거림.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이 벅찼다.

그 체험만은 오롯이 소희 혼자만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따로 적지 않았다.

도서관을 나와 지하철로 향했다.

신도림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 불빛을 보며 서준과 나눈 문자를 다시 읽었다.

[소희 씨, 그런 거 쓰는 거 좋아해요?]

[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늦었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지금이 딱 좋은 거 같아요.]

핸드폰을 내리다가,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흔 즈음, 진한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진한 갈색 머리를 쓸어 올리며, 안경을 고쳐 쓰고는

무릎 위에 작은 노트를 펼쳐 놓고 뭔가를 계속 적고 있었다.

창밖을 봤다가, 사람들을 봤다가, 다시 노트로 눈을 돌리는 그 순서.

소희는 이상하게 그 모습에서 눈을 못 뗐다.

그때, 가방 속 핸드폰이 낮은 빛을 냈다.

[시스템 안내: 송소희 님의 모든 여정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탑승 티켓이 발급됩니다.]

[대상을 지정하시겠습니까? (Y/N)]

'마지막…'

소희는 그 단어를 잠깐 들여다봤다.

슬프지도, 그렇다고 후련하지도 않았다.

소희는 다시 그 여자를 봤다. 펜 끝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처음 시스템을 만난 날도 이런 아침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 정말 마지막인 걸까..?’

잠시 멈칫했지만,

[Y]를 눌렀다.

.

.

.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그 찰나,

여자의 펜이 멈췄다.

고개를 든 여자와 어두운 유리창 속에서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무릎 위 노트 귀퉁이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낯익은 글씨였다.

어디서 봤더라..?

그 생각을 이어 가기도 전에, 눈앞이 하얗게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