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막: 3.18 운명의 정오
1919년 3월 18일, 오전 11시 40분.
영해면 성내리 장터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불어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봄 농사를 앞두고 씨앗과 농기구를 사러 나왔다는 핑계로 영해, 창수, 병곡 일대의 장정들이 굳은 얼굴로 장터 골목을 메웠다. 무거운 등짐을 진 촌부들의 거친 숨소리와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뒤엉켰지만, 그 소란스러움의 밑바닥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백성들의 낡은 바지적삼 안에는, 지난밤 도축장 지하실에서 피와 먹물로 삐뚤빼뚤 그려낸 태극기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 시각,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영해 우편소(郵便所) 뒷골목. 일제가 영해 일대를 통제하기 위해 깔아 둔 흑색 전신선이 처마를 거쳐 포항과 대구를 향해 뻗어 있었다.
진우는 우편소 뒷담의 썩은 판자벽에 기댄 채, 정규하가 내어준 낡은 은장 회중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백여 년 뒤의 스마트워치는 방전되어 차가운 고철이 된 지 오래였지만, 태엽으로 움직이는 낡은 회중시계의 초침은 1919년의 정오를 향해 어김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아재, 손은 괜찮으십니까."
진우가 담장 너머에 시선을 둔 채 낮게 속삭였다. 곁에는 농사꾼 권태원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염려 마소. 평생 보리 베고 볏짚 자르던 낫질입니데이. 쇳줄이든 뭐든 단박에 끊어낼 수 있구마."
권태원의 투박한 손에는 밤새 숫돌에 간 낡은 조선 낫이 들려 있었다. 손등엔 긴장으로 핏대가 섰지만, 그의 눈빛은 짐승의 목줄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우가 짠 시가지 전술의 첫 단계. 우편소 지붕을 가로지르는 통신선을 끊는 일이었다. 정오에 군중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면, 주재소 헌병들은 본능적으로 우편소 전화기를 들어 포항과 대구에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그 구원 요청을 이 골목에서 물리적으로 틀어막아야 했다.
"11시 50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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