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막: 폭풍을 준비하는 자들
성내리 도축장의 피비린내와 매캐한 숯검정 냄새를 뒤로하고 들어선 괴시리(槐市里)의 밤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영해면 한구석, 묵직한 등뼈처럼 자리 잡은 이 오래된 반촌(班村)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기와지붕 위로 서늘한 달빛이 부서졌다. 대숲을 뚫고 온 3월의 삭풍이 뺨을 때렸지만, 두터운 흙담과 묵은 소나무는 미동조차 없었다. 사흘 뒤 불어닥칠 피비린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평온이었다.
거사를 사흘 앞둔 밤. 진우는 종택(宗宅) 마당에 서서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흰 고무신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사랑채 창호지 너머로 꼿꼿하게 앉은 사내의 윤곽이 일렁였다. 밤을 새워 거사 선언문을 다듬고 격문을 쓰는 정규하의 그림자였다. 진우가 사랑채 툇마루로 걸음을 옮겼다. 낡은 나무가 삐걱대는 소리에 맹렬하던 붓질이 멎었다.
"들어오너라. 날이 차다."
낮고 단단한 음성이었다. 방문을 열자 짙은 묵향과 마른풀 냄새가 훅 끼쳐왔다. 작은 서안(書案) 앞에 단정히 앉은 정규하의 흰 명주 두루마기는 정갈했고, 먹을 머금은 붓끝은 고요했다.
"아직 깨어 계셨습니까."
진우가 아랫목에 무릎을 꿇자, 정규하가 붓을 벼루에 내려놓으며 옅게 웃었다.
"잠이 오겠느냐. 사흘 뒤면 이 영해 바닥이 백성들의 피로 덮일 터인데. 내가 쓰는 이 격문 한 줄이 누군가의 아비와 자식을 사지(死地)로 모는 사형 선고임을 알기에, 도무지 눈을 붙일 수가 없구나."
도축장 지하실에서 뿜어내던 기세는 없었다. 그곳엔 남의 목숨을 짊어진 자의 무겁고 참담한 고뇌만이 배어 있었다.
진우는 방 한구석의 낡은 병풍을 멍하니 응시했다. 진우에게 이 종택은 먼 미래의 '기념관'이었다. 유리관 너머 박제된 유물로만 보던 사랑채에 1919년의 거친 무명옷을 입고 앉아 증조부와 마주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온 자만이 겪는 경외이자 잔인한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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