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막: 폭풍을 준비하는 자들
영해면 성내리의 밤거리는 일찍부터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다가올 폭풍을 예감한 팽팽한 긴장감 아래, 백성들은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낡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 척박하고도 얼어붙은 적막을 비웃듯, 기분 좋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틀거리는 사내 하나가 골목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싸구려 포마드 기름을 바른 머리에 번지르르한 중절모. 일제가 하사한 검은색 양복을 빼입은 자. 영해 바닥의 동족들을 팔아넘기고 주재소의 개 노릇을 하며 배를 불려 온 친일 앞잡이, 강문수였다.
그의 품속에는 오늘 하루 장터의 상인들을 윽박질러 뜯어낸 지폐 다발과, 며칠 뒤 있을 만세 시위의 동태를 스즈키 소장에게 밀고하여 받아낼 두둑한 현상금에 대한 탐욕이 시커멓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조센징 새끼들. 백날 천날 태극기 쪼가리 흔들어봐야 왜놈들 총통 앞에선 다 뒈져나갈 고깃덩어리일 뿐이지. 안 그카나?"
강문수가 허공에 대고 조소를 뱉어내며 비좁은 골목 모퉁이를 도는 찰나였다.
퍽-!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가 강문수의 안면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의 입술이 터지고 앞니가 부러져 나갔다.
"읍, 으읍!"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강문수의 비명을 틀어막고, 그의 양복 멱살을 짐승 끌듯 질질 끌어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자랑하던 중절모가 진흙 바닥에 나뒹굴고, 고급 양복이 더러운 오물에 젖어들었다.
평생 소와 돼지의 숨통을 끊어온 백정 칠성의 압도적인 완력이 배신자의 얄팍한 육신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강문수가 다시 퉁퉁 부어오른 눈을 뜬 곳은, 도축장 지하실이었다.
"살려... 살려주이소! 돈이라면 내 품에 있는 거 다 가져가도 좋으이. 목숨만은 제발!"
강문수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육중한 도마 앞에 꿇어앉혀진 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호롱 불빛 너머로 서늘하게 빛나는 칠성의 발골도와, 분노로 이가 갈리는 권태원, 최학수의 안광이 그를 산 채로 찢어발길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살기 어린 백성들의 시선보다 강문수의 숨통을 더욱 옥죄게 만든 것은, 도마 건너편에서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는 두 명의 사내였다.
순백의 명주 두루마기를 입은 영해의 영수(領袖) 정규하. 그리고 그 옆에 선, 기이할 정도로 짧은 머리에 짐승의 눈빛을 한 낯선 청년 진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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