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과 소년

제2막: 폭풍을 준비하는 자들

by조삿갓

영해 장터를 무겁게 굽어보는 칠보산(七寶山)의 험준한 산등성이 위로, 1919년 3월의 삭풍이 귀신같은 곡성을 내며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벼랑 끝.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진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최학수는 굶주린 짐승처럼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의 거칠고 뭉툭한 손끝은, 겹겹이 바른 기름종이와 낡은 무명천으로 미라처럼 꽁꽁 싸매여 있던 길고 무거운 물건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고 있었다.


스르륵.


천이 벗겨지자 희미한 어둠 속에서 서늘하고도 흉측한 쇳덩어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제 베르단(Berdan) 소총. 1907년 광화문 일대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당시, 시위대(侍衛隊) 대대장의 자결에 분노하여 일본군과 최후의 시가전을 벌였던 최학수가 목숨을 걸고 빼돌린 낡은 병기였다.


그날, 압도적인 일제의 기관총과 야포 앞에 수백 명의 전우가 살점을 찢기고 고깃덩어리가 되어 나뒹구는 참상을 두 눈으로 목도해야 했던 젊은 병사는, 12년이라는 지독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한쪽 다리를 저는 늙은 노병이 되어 있었다. 총열은 붉게 녹이 슬었고 강선은 마모되었으나, 노병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응어리진 12년 묵은 살기(殺氣)만큼은 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진우는 참나무 둥치에 몸을 기댄 채, 최학수의 그 처연하고도 장엄한 의식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총알은, 어미를 잃고 짐승한테 뜯어 먹힌 내 부하들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단 세 발뿐이다."


최학수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늙은 눈깔은 아직 왜놈들의 미간과 심장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지. 12년 전, 그 지옥 같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내 심장도 이미 멈췄어야 했다. 이 수치스러운 목숨을 구차하게 연명한 것은, 오직 이 세 발의 납탄을 놈들의 대가리에 박아 넣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어."


최학수는 절뚝이는 다리를 바위에 지탱하며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녹슨 베르단 소총의 개머리판을 자신의 움푹 팬 어깨뼈에 단단히 견착 했다.


그러나 12년이라는 세월은 노병의 근육을 갉아먹은 뒤였다. 무거운 총신을 받친 최학수의 왼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작은 떨림은 사거리 100미터 밖에서는 표적의 숨통을 빗겨 나가는 치명적인 오차를 만들어낼 터였다.


진우가 소리 없이 다가가 최학수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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