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막: 폭풍을 준비하는 자들
도축장 지하실, 차가운 흙바닥 위로 시커먼 숯덩이가 거칠게 마찰하는 소리만이 불길한 진혼곡처럼 울려 퍼졌다.
진우는 무릎을 꿇은 채, 아궁이에서 꺼낸 굵은 참나무 숯으로 눅눅한 진흙 바닥 위에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의 나열이 아니었다. 주재소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 영해 장터의 세 갈래 진입로, 우편소의 위치, 면사무소 담장 두께, 그리고 일본군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포항과 영덕 방향의 주요 길목까지. 자신이 딛고 온 미래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았던 지도의 형상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호롱불의 누런빛이 진우의 등 뒤로 거대한 야차(夜叉) 같은 그림자를 흙벽에 흩뿌렸다.
"이것이... 네가 말한 사냥의 도면이란 말이냐."
정규하가 낡은 나무 의자에서 상체를 숙이며 물었다. 평생 성리학의 꼿꼿한 활자만을 들여다보던 젊은 유학자의 맑은 눈동자에, 그토록 건조하고도 치밀한 살육의 공간 지각이 기이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냥이 아닙니다. 생존의 도면입니다."
진우가 숯검정이 묻은 손을 거칠게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은 흔들리는 호롱불 빛을 받아 짐승처럼 서늘하게 번뜩였다.
"다가올 3월 18일, 지사님께서는 영해와 영덕 일대의 백성 삼천 명을 이 장터로 불러 모으실 계획이시지요. 양손에 낡은 태극기를 쥐고, 그 어떤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평화롭고 비폭력적으로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는 것. 그것이 지도부가 피로 쓴 거사의 명분일 겁니다."
진우의 말에 정규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의 목적은 무도한 살생이 아니라, 빼앗긴 주권을 되찾겠다는 이천만 동포의 피 끓는 의지를 저 야만적인 제국과 전 세계에 떳떳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피를 흘리게 된다면 기꺼이 우리의 가슴을 내어줄지언정, 폭도로 전락하여 대의(大義)를 훼손할 수는 없다."
그 고결하고도 숭고한 선언은, 1919년 봄 조선 팔도를 뒤덮었던 3.1 운동의 가장 눈부신 정신이자 한계였다. 그러나 진우는 쩍쩍 갈라진 입술을 짓씹으며 그 거룩한 명분을 무자비하게 박살 내버렸다.
"그 평화 시위라는 숭고한 껍데기만으로는, 이 척박한 지하실의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아니, 장터에 모인 삼천 명의 억울한 백성들이 몰살당하게 될 것입니다."
진우의 차가운 단언에 칠성이 헛바람을 들이켰고, 구석에 웅크려 있던 연와와 덕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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